강원도 강릉시 원주대 후문 근처에는 ‘인생서가’라는 작은 책방이 자리하고 있다. 평소에는 책방이지만 주말이 되면 ‘나그네교회’로 변신하는 이곳은 최성기(43) 목사가 운영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그는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책방에서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지역사회를 섬기고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목회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책방은 단순한 독서 공간을 넘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나누는 특별한 커뮤니티로 자리매김했다.
최 목사는 지난 22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책방목회에 대해 “가족들과 주변 이웃을 다 합쳐 10명 안팎이 모이는 작은 교회지만 나그네 교회로서 이웃과 여행객들이 머물다 가는 쉼터와 같다”며 “교회의 성장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지역의 안전과 평화를 전하고 이웃과 사랑을 나누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학부와 신대원을 마친 후 10개월간 부목사로 사역했으나, 기존 교회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회하기 위해 사역지를 떠났다. “목사라는 정형화된 틀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자신이 원하는 목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인생서가’를 탄생시켰다. 책방은 2023년 6월 문을 열었다.
책방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와 데이비드 캐슬러의 ‘인생수업’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곳의 절반 정도는 죽음과 관련된 책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다양한 주제의 도서들로 구성돼 있다. 최 목사는 “죽음은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오늘을 더 잘 살아가게 만드는 주제”라고 강조하며, “죽음을 상상하고 준비하면서, 누구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 이것이 복음과 사랑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나그네 교회’의 이름에 성경 속 나그네의 정체성을 반영했다. “성경 속 나그네는 소외되고 무시받는 계층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가 보여준 낮은 자세와 잘 맞는 단어라고 생각해 나의 목회 방향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최 목사가 처음 책방 목회를 시작할 때 영감을 받은 곳은 광주의 숭심교회(안성 목사)였다. 그곳은 북스테이와 책방목회를 병행하며 10년 넘게 지역사회에서 굉장한 힘을 발휘해왔다. 겨울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들도 모여 동네 어르신을 위해 뜨개질 봉사를 하거나, 야간 순찰로 지역 치안을 유지하는 등 책방을 중심으로 지역사회를 배려하고 돕는 활동들이 이어졌다.
이를 본 최 목사도 ‘인생서가’를 단순한 책방이 아닌 지역 사회의 따뜻한 쉼터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는 “최근에는 한 성도가 우연히 책방을 방문해 주일예배를 같이 드리고 신앙 이야기를 하며 암 말기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듣고 위로했다”며 “책방이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방은 북카페처럼 운영되면서 지역 목사들이 조용히 설교문을 작성하거나 셀모임을 하는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최 목사는 책방을 운영하며 지역의 작은 교회들과 연대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었다. 책방 안에는 약 3평 크기의 작은 방이 마련되어 있어 나그네들이 쉬어갈 수 있다. 선교사나 목회자 친구들이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재충전하기도 하며, 최근에도 동해와 강릉 인근의 작은 교회 목사들이 연결돼 협력하고 있다. 최 목사는 “목사나 사모가 아프게 돼서 교회가 어려운 상황일 때 나그네교회 입간판을 들고 가서 같이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설교를 한다”고 설명했다.
‘인생서가’는 책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그중 하나는 장례식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이는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이 곧 오늘을 잘 사는 길이라는 최 목사의 믿음에서 출발한다. 사진 촬영이 취미인 그는 영정사진 촬영 요청도 받으며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위로를 제공하려 노력한다.
최 목사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며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면,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뀐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웃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기도 제목을 밝혔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