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사이비가 교리 따지는 이유?…“무작정 신이라 하면 효과 없어”

입력 2024-10-24 14:30
기독교계 이단·사이비 종교는 대부분 성경 말씀을 내세워 신도를 모집하고 교주를 신격화한다. 사진은 한 남성이 백색 가면을 들고 있는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16세기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부패한 교회에 맞서 외친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총’은 근·현대 사회에 대전환을 가져왔다. 성직자 없이 개인이 오롯이 하나님을 마주할 수 있다는 이 혁신적 구호 이후에도 동·서양 역사에는 ‘신의 대리자’나 ‘재림주’를 참칭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최근 이단·사이비 종교 전문가들이 추산한 재림주는 국내에서만 80여명에 달한다. 국민일보 ‘책과 영성’은 종교개혁 507주년을 맞아 성경을 무기 삼아 세상을 미혹한 이들의 민낯을 공개한 신간 2권을 소개한다.


“신도들은 어떻습니까. 휴거(携擧)된 사람은 있습니까.”

1992년 10월 28일 자정, 경남의 한 기도원에서 신도 200여명과 휴거를 기다리던 K 목사가 강단에 엎드린 채 취재 온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모두 그대로 있다”는 기자의 답에 장탄식을 내뱉은 그는 멍한 표정으로 일어나 “우선 서울 상황을 보자”며 좌중을 안심시켰다. 서울 마포구 본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미혹한 ‘다미선교회 휴거 소동’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날 K 목사에게 답변한 기자는 사이비·이단 전문 매체 ‘현대종교’ ‘교회와 신앙’에서 편집장을 역임한 장운철 옥천향수신문 편집국장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와 MBC ‘PD수첩’ 및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에 자료를 제공하거나 직접 출연해 이들 단체의 불법적 행위를 고발했다. 최근엔 30여년 취재 후일담과 소회를 담은 신간 ‘나는 교주다’(파람북)를 펴냈다.

책에는 우리 사회 음지에서 암약하는 각양각색의 교주가 등장한다. ‘대통령이 되라는 하늘의 직통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전단을 뿌리는 교주, 자신이 쓴 영서(靈書)를 보며 매번 다른 해석을 내놓는 교주, ‘예수신을 모신다’고 신문에 광고를 내고 불상 앞에서 점치던 교주, 자신을 ‘재림 예수’로 일컬으며 제멋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교주…. 선량한 시민 다수를 꾀어낸 이들은 대체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웃고 지나칠 순 없는 건 그 교주에게 인생 전부를 바친 피해자가 적잖기 때문이다.

기독교계 이단·사이비 종교가 교리를 깐깐하게 따지는 건 결국 교주 우상화를 완성해 필요에 따라 신도를 동원하기 위해서다. 사진은 한 남성이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모습을 나타낸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사기꾼’ 아니면 ‘정신이상자’로 분류되는 이들 교주를 사람들은 왜 믿을까. ‘사랑’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사랑이 고프거나 가족·친지가 불치병에 걸리는 등 인생이 크게 흔들리는 순간 탈출구를 찾다 사이비 종교에 휘말리는 사례가 꽤 많다는 것이다. 최근엔 성경공부로 위장한 공부방을 열고 교주 신격화 교육을 하는 사이비 종교 단체가 꽤 늘면서 의도치 않게 이들 교주에 빠질 위험성도 덩달아 커졌다.

저자는 “요즘 교주는 과거보다 이론으로 무장하는 경향이 짙다. ‘내가 신’이라는 노골적인 주장을 내놓아선 효과가 없기 때문”이라며 “반면 일반 교회에선 교리 교육보다 등록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이어 “교리와 성경공부로 지적·영적 만족을 추구하고픈 새신자에게 헌금 봉사 직분 건축 등만 이야기한다면 그의 마음은 어떻겠는가”라며 “교회가 올바른 성경 해석과 사랑을 제공한다면 사이비 교주는 이 땅에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세상을 유혹한 종말론’(기독교포털뉴스)은 장운철 편집국장과 국내 사이비 종교 현장을 누빈 정윤석 기독교포털뉴스 대표가 쓴 책이다. 27년간 사이비 종교를 파헤친 기자이자 목회자인 저자는 책에서 초대교회 시기부터 현대까지 동·서양에서 종말의 소문을 퍼트린 이들의 면면을 추적한다.

대부분 종말론의 뿌리가 왜곡된 성경 해석에서 출발하는 만큼 저자는 “앞으로도 이름과 간판만 바꿔 달은 ‘종말 사기꾼’에 미혹되지 않도록 기독교인이 ‘바른 종말론’을 익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전쟁·전염병·자연재해는 인류 역사상 끊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이럴 때마다 종말론이 극성을 부린다는 것”이라며 “(재림 등 세상의 종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믿고 이를 예측하려고 하는 인간의 시도를 경계하자”고 당부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