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이 오는 27일 일본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의석수를 합쳐도 과반이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민당은 비자금 스캔들로 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에게 정당보조금을 지원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자민당 고전의 가장 큰 이유가 비자금 스캔들로 인한 역풍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선거를 앞두고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비자금 스캔들 의원에게 자금 지원…연이은 악재
아카하타는 자민당이 비자금 스캔들로 인해 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가 대표로 있는 당 지부에도 정당보조금을 보냈다고 23일 보도했다. 아카하타는 공산당 기관지로 비자금 스캔들을 가장 먼저 보도한 바 있다.
아카하타에 따르면 자민당은 9일 1차 공천 이후 각 지부에 2000만엔(약 1억8204만원)을 후보에게 정당교부금 차원에서 지급했다.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간사장이 지부 회계책임자에게 보낸 ‘지부 정당교부금 지급 통지서’에 따르면 당시 공인료(500만엔)와 활동비(1500만엔)로 구분돼 있다.
문제는 이를 자민당 공천을 받지 못한 의원이 운영하고 있는 지부에도 보낸 것이다. 현재 비자금 스캔들로 자민당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당 지부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후보는 8명이다. 비공인 지부 회계책임자는 “당 본부로부터 13일에 받은 문서엔 공인료라는 문구는 없고 당세확대를 위한 활동비로 2000만엔을 송금한다는 내용이었다”고 인정했다.
모리야마 간사장은 “후보자가 아닌 당 지부에 당세 확장 목적에서 지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른 당 관계자도 교도통신에 “출마하지 않은 전 의원의 당지부에도 비례표 발굴 때문에 활동비를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권은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비공인이라고 해놓고 사실상 공천한 것”이라며 “역시 자민당은 반성하지 않는다”고 맹비난했다. 제4야당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도 “후보자에게 지출한 것이 아니란 건 궤변”이라며 “스텔스 공천”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보도 이후 엑스(X·옛 트위터) 등에서도 ‘비공인’ ‘정당보조금 2000만엔’ 등이 트렌드에 오르면서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정세조사 위태롭자 아베 발언까지 가져온 이시바
정세조사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이 과반을 잃을 수 있다는 여론조사가 이어지자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말 바꾸기’ 논란에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사용했던 표현까지 차용하며 야당에 대한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22일 아이치현 도요타시 연설에서 “악몽 같은 민주당 정권이라고 말하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많이 사용했던 표현으로 이시바 총리는 2019년 이를 두고 “과거 정권을 예로 들며 자신들이 옳다는 식의 태도는 위험하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말을 바꾼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실정을 부각해야 할 정도로 자민당 상황이 위태롭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이시바 총리 등 당 간부들은 전날엔 당 본부에서 1시간 동안 회의를 가지고 중점 선거구를 선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20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의 40개 선거구 등이 해당된다. 선거가 종반으로 접어들며 접전 지역구 위주로 최대한 당세를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일각에선 앞서고 있는 선거구도 중점 선거구로 지정했던 과거와 달리 10%포인트 안팎 차이로 뒤지는 선거구는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시바 총리는 같은 날 각 캠프에 “죽기 살기로 전국을 뛰어다니겠다”는 내용의 긴급통지문까지 발송했다.
실제 일본 언론의 각종 정세조사에선 자민·공명 연합의 과반 유지가 위태롭다는 분석이 많다. 아사히신문은 21일 정세조사를 통해 자민당 의석수가 선거 전(247석)에서 50석 정도가 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자민당과 공명당을 포함해도 “과반수는 미묘한 정세”라고 전했다. 교도통신과 지지통신도 비슷한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심지어 산케이신문과 FNN방송은 자민·공명 연합이 선거 공시 전 288석에서 70석 이상 잃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자민당 연정 확대 언급까지 나와
자민당 내에선 패배를 기정사실화하고 연정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모리야마 간사장은 20일 “과반이 깨진다면 나라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정당과 긍정적으로 협의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권에선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다 대표는 “(해산 직전) 내각 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했다”며 “그 대상 정당과 연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약진이 예상되는데다 자민당과 그나마 협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는 국민민주당도 연정에는 부정적 입장이다. 다만 ‘부분적 협력’ 가능성에 대해선 여지를 남겼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