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한 미국 개신교 신자들이 압도적 지지가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여전히 많은 백인 개신교인들이 보수 정당의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그의 여러 추문과 끝없는 저속한 언행, 보수적 가치의 후퇴 탓에 2016년이나 2020년 대선만큼 지지세가 강하지는 않다는 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를 향한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믿음이 흔들리는 신호가 나타난다”며 “민주당은 트럼프의 행동에 지친 백인 신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애리조나 크리스천대가 지난 8일 발표한 최신 연구에 따르면 정기적으로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유권자 중 투표 의사가 없는 이들이 3200만명이나 됐다. 미국 대선에서 개신교 유권자들은 대선에서 결정적 역할을 해왔는데 이들의 투표 열기가 떨어지면 대선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를 이끈 조지 바르나 박사는 “2020년에 트럼프와 바이든의 격차는 약 700만표에 불과했다”며 “이런 맥락에서 2024년에 투표하지 않을 3200만명의 일반 교회 신자는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득표율 1~2%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경합주에서는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해당 연구에서 개신교 유권자들이 선거를 외면하는 이유로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68%)’ ‘모든 주요 후보를 싫어한다(57%), 어떤 후보도 자신의 중요한 견해를 반영하지 못한다(55%), ‘나의 투표가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52%)’ 등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투표율이 떨어지면 낙태와 성 소수자 권리 등에서 보수적 입장을 취해온 공화당이 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개신교 목회자들 1003명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0%가 트럼프에게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 해리스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24%에 그쳤다. 하지만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23%나 됐다. 2020년 대선 당시 4%, 2016년 당시 3%와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트럼프는 최근 유세에서도 해리스를 향한 인신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엔 이미 고인이 된 골프 선수 아놀드 파머의 성기 크기에 대해 저속한 농담을 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낙태 등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이 관심을 두는 사안에서 트럼프가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는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개별 주가 알아서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공화당이 가족과 생명 등 보수적 가치에서 후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은 트럼프 지지가 느슨해진 개신교 신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회원 30만여명을 보유한 ‘해리스를 위한 복음주의자’라는 이름의 단체는 경합주의 개신교 신자를 겨냥해 수백만 달러를 들여 TV광고를 하고 있다. 해당 광고는 회개를 강조하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와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본 적이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는 트럼프의 영상을 함께 배치했다. 또 “이웃을 사랑하라”고 설교하는 그레이엄 목사에 이어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 먹는다”고 말하는 트럼프도 나온다.
해리스를 지지하는 개신교 신자는 전체 개신교 신자 중 아직은 소수지만 몇만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경합주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실제로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블 벨트(보수적인 기독교 성향)’ 조지아주에서도 트럼프가 1만2000여표 차이로 패배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날 라틴계 종교·비즈니스 지도자들과 원탁회의를 열고 “이번 선거에서 지면 우리는 더 이상 국가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다시는 선거를 치르지도 못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원탁회의는 참석자들이 트럼프를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트럼프는 이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카멀라는 자신의 집회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속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우리의 운동은 기독교인을 사랑하고 신자를 환영한다”고 적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도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하나님만이 트럼프의 유일한 희망이며, 미국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쓰기도 했다. 그는 일찌감치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상태다.
트럼프에 맞서 해리스도 최근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적극 강조하고 있다. 해리스는 지난 20일 조지아주 스톤크레스트에 있는 대형 흑인 교회 예배에 참석해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라고 요청하는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 배웠다”고 말하기했다. 또 최근엔 경합주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교회에서 성경 시편을 인용하며 연설을 마치기도 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