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벼린 엔씨소프트… 박병무표 고강도 ‘체질 개선’ 가속

입력 2024-10-22 17:04 수정 2024-10-22 23:26
김택진 대표(왼쪽), 박병무 대표. 엔씨 라이브 방송 캡처

엔씨소프트가 신작 흥행 실패로 보릿고개를 넘으면서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벼리는 모양새다. 올해 3월 공동 대표 체제로 돌입한 이후 두 번째 분사와 인력 감축 카드를 꺼냈다. 올해 초부터 경영 효율화 및 핵심 사업 경쟁력 강화를 골자로 한 고강도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만큼 체질 개선 후 어떤 모습을 갖출지 업계 관심이 크다.

22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엔씨는 전날 임시 이사회를 열고 단순·물적 분할을 통해 4개의 자회사 신설을 결정했다. 신설 회사는 게임 개발 스튜디오 3개, 인공지능(AI) 기술 전문 기업 1개 등 4개의 비상장 법인인데 다음 달 28일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해 회사 분할 및 신설 회사 설립을 확정할 예정이다. 각 신설 회사의 분할 기일은 2025년 2월 1일이다.

넥슨, 넷마블 등 경쟁 게임사처럼 본사는 퍼블리싱을, 자회사는 게임 개발에 집중하는 체제를 갖추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또 ‘선택과 집중’의 의도도 엿보인다. 시장에서 경쟁력이 여전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 무게를 싣는 한편 비인기 장르 개발 조직을 해체해 고정비 감축, 인력 재배치를 추진한다는 거다.

엔씨가 독립 게임 개발 스튜디오로 신설하는 지식재산권(IP)은 ‘쓰론 앤 리버티(TL)’ ‘LLL’ ‘택탄(TACTAN)’ 등 3종이다. TL 사업부문은 스튜디오엑스(Studio X) , LLL 사업부문은 스튜디오와이(Studio Y), 택탄 사업부문은 스튜디오지(Studio Z)로 새롭게 출범한다. 각사 대표는 게임 IP를 총괄해왔던 최문영 캡틴, 배재현 시더, 서민석 본부장이 내정됐다.

TL은 지난 1일 글로벌 론칭 후 최고 동시 접속자 수 33만 6300명을 기록하면서 흥행 청신호를 켰다. 출시 3주가 지난 현시점에도 글로벌 이용자 수 400만명을 돌파했고 10만명 후반에서 20만명 초반까지 동시 접속자 수를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다. 슈팅게임 LLL과 전략게임 택탄 역시 세계 시장 경쟁력과 성공 가능성을 확보한 IP로 평가되는 만큼 해당 장르의 개발력과 전문성 강화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최 캡틴은 전날 TL 공지사항을 통해 “최근 회사의 변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라셨을 거라 생각된다. TL을 사랑해주시는 여러분께서 불안해하실 수 있는 점 알고 있다”면서도 “확실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TL의 개발 체제는 스튜디오 출범에 따라 더욱 강화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엔씨만의 AI 연구개발 조직인 NC 리서치(Research)도 독립한다. 신설 회사명은 엔씨 에이아이(NC AI)로, 자체 개발한 바르코 ‘LLM’ 등 AI 기술 고도화를 추진한다. 동시에 게임 개발에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신규 사업 확장에도 주력한다. 해당 조직은 이연수 본부장이 대표로 이끈다.

4분기 출시를 앞둔 ‘리니지’ IP 기반의 ‘저니 오브 모나크’, ‘아이온’ 시리즈의 후속작 ‘아이온2’, 지난 8월 ‘블레이드 앤 소울’ IP 기반으로 출시한 수집형 RPG ‘호연’ 개발 조직은 계속 본사에 남는다. 신규 프로젝트와는 달리 레거시 IP는 분할 대상에서 제외된 셈이다.

상당수의 비인기 프로젝트는 문을 닫는다. 엔씨에 따르면 지난 6월 출시한 ‘배틀크러쉬’부터 개발 중인 인터랙티브 무비 ‘프로젝트M’, 조선 시대풍의 액션 게임 ‘프로젝트 E’, 퍼즐게임 ‘퍼즈업2’ 등이 셔터를 내린다. 엔씨의 대표 마스코트인 ‘도구리’를 이용한 캐주얼 게임 ‘도구리 어드벤처’와 메타버스 플랫폼 ‘미니버스’도 서비스 종료 절차를 밟는다.

김택진 박병무 공동대표는 전날 임직원들에게 보낸 사내 메시지를 통해 “주력 장르를 넘어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트렌드에 맞는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분이 불철주야 노력해왔다. 다만 아쉽게도 우리의 노력은 고객과 시장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며 “회사와 경영진은 개발 스튜디오가 각각의 개발 문화와 철학을 바탕으로 장르 전문성과 기술 경쟁력을 갖춘 독립 개발사로 자립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겠다. 본사 역시 익숙한 방식을 버리고 빠르고 유연한 개발 시스템 구축과 경영 혁신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엔씨 홈페이지 발췌

4개의 신설 법인 설립과 함께 조직개편도 진행한다. 회사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일부 개발 프로젝트와 지원 기능을 종료 및 축소하는 게 골자다. 엔씨가 인력 재배치와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건 2012년 이후 12년 만이다.

엔씨 구직 사이트에서 진행하던 채용 공고는 모두 삭제됐다. 현재 홈페이지에는 계약직 총무 업무 담당자 공고만 올라온 상태다. 채용 진행 중이던 몇몇 지원자들에게는 일시 중단에 따른 양해의 뜻을 전히기도 했다.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엔씨는 ‘미래 성장을 위한 내부 조직개편 및 인력 구조 재정비로 인해 외부 채용을 한시적으로 중단하게 됐다. 채용 전형이 일정 기간 지연될 수 있고 채용 재개시 연락하겠다’고 지원자에게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든 건 앞서 박 대표가 의지를 보인 고강도 경영 쇄신 작업 일환으로 해석된다. 엔씨는 올해 1월 자회사 엔트리브소프트를 폐업했으며 지난 6월엔 QA(품질보증) 서비스 사업 부문과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 공급(SI) 사업 부문 등 2개 사업을 물적으로 나눠 이달 2일 엔씨큐에이·엔씨아이디에스로 출범했다.

일각에서는 분사한 스튜디오의 폐업·매각 등으로 고용 안정이 우려된다는 시각도 있다. 앞서 회사와 노조는 엔씨큐에이, 엔씨아이디에스 분할 당시 구조조정으로 한 차례 내홍을 겪은 바 있다.

두 공동 대표는 “불확실한 프로젝트 및 지원 기능의 종료와 축소,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될 인력 감축을 포함하고 있다. 많은 시간을 같이해온 분들께는 매우 죄송한 일이지만 지금은 회사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큰 폭의 변화가 불가피한 순간”이라며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영향을 받게 되는 분들께는 적극적인 지원과 보상을 약속드린다. 회사는 이 과정에서 관련 법규를 준수하고 임직원분들과 투명하게 소통하겠다”고 전했다.

김지윤 기자 merr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