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목회지가 탄광촌이라면 석탄을 캐는 광부들의 막장 인생을 잘 알아야 전도가 더 능률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제 친구 목사님은 미국 시애틀과 타코마 근교에 경기도 파주와 법원리에서 미군을 따라가서 정착한 여성분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는데, 그분들의 아픈 삶을 잘 이해하며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넉넉한 위로자가 되어 모두가 존경하는 휼륭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섬에서 목회를 하려고 하면 어부들의 삶을 먼저 알고 다가가야 합니다. 특히 그분들과 공통 관심사를 공유해야 그들 속으로 다가설 수 있습니다. 바람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맞바람 샛바람 하늬바람입니다. 어부들은 바람을 맞으면 그것이 어떤 종류인지 바로 압니다. 기온이 다르고 불어오는 방향이 다릅니다. 또 언제 사리와 조금인지 오늘이 몇 물인지, 기본적으로 이런 것은 모든 어부가 알고 공유합니다. 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보고 살아가는 섬사람들은 태평양 같은 큰마음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모습이 더 많았습니다. 배려심이 부족하고 대부분 배타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서 이웃이자 친척이면서도 절대 양보하지 못하고 형제간에도 오랜 세월 마치 원수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사랑받을 줄도, 사랑을 줄 줄도 모르는 이들이 서로에게 아픈 곳을 더 찔러가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 섬입니다.
이런 주민들에게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다짐하고 달려온 목회자들은 순박한 줄 알았던 섬사람들의 본 모습에 많이 실망합니다. 무지막지하게 직설적으로 복음을 거부하며 표현하는 그들의 거친 언어는 치료자로 왔는데 되레 상처를 입고 낙심하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이 동족 유대인들에게 받았던 고난의 이야기가 때로는 낙도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3년의 세월을 사셨던 갈릴리 어부들은 이곳 섬사람들과 무엇이 달랐을까요. 행여 섬사람들을 폄훼하는 표현이 될까 조심하면서 차마 다 밝히기 어려운 마음을 꼭 걸어 잠그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곳 섬사람들과 갈릴리 어부들이 똑같은 모습이었기에 예수님은 무조건 “주라” “섬기라” 당부하신 줄 믿습니다.
병원을 다녀온 지 3일 후 광웅 어른이 퇴원하셨고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님, 이번 주부터 우리 집사람 교회 데려가십시오.”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긴 터널 속에 갇혀 끝이 보이지 않던 섬목회였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 안절부절못하면서 사도행전 29장을 쓰려고 할 때 작은 불빛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다시 힘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첫 주에는 제가 할머니를 모시고 왔습니다. 하지만 암 진단을 받으신 어르신이 6개월 사시는 동안에는 주일이면 언제나 직접 어르신이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교회까지 모셔다 주셨습니다. 저는 어르신께 함께 예배드리자고 여러 차례 권면했지만 섬사람들 고유의 고집으로 어르신은 한 번도 교회 안에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성품으로 변화되셨고 아플 때 방문해 기도해 드리면 거부감 없이 받아주셨습니다. 어르신은 그분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신 할머니를 성도로 만들어주시고 자신은 비록 교회 출석은 안 했지만 교인처럼 사시다 1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오랜 세월 장애로 인해 힘들었던 지난날을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며 믿음이 자라나셨고 넘치는 감사 생활 속에서 특유의 친화력으로 다른 성도들의 중심에서 화평을 이루어 내고 계십니다. 이제는 이름 없는 전도사님 같은 모습으로 주님을 기쁘게 하십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