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습니다.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지요. 어제는 바람도 많이 불고 거리엔 낙엽도 제법 많았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과 신앙도 그 깊이가 나날이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는 종교개혁주일을 앞둔 주간입니다. 더미션에서는 교회 안에 관행처럼 이어지는 임직헌금과 그 행태에 대해 짚었습니다. 요즘 교회에서는 장로 권사 투표들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선출된 분들이 교회에 내는 헌금이 지나치게 많거나 의무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더미션에서는 이 문제를 짚어봤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젊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임직 기피 현상까지 있었습니다.
국민의힘 중진 국회의원들이 대법원의 ‘동성 커플 건강보험피부양자자격인정’ 판결과 관련해 국회의 입법권이 침해됐다며 헌법재판소(헌재)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다고 밝혀 헌재 판단이 주목됩니다. 동성혼 반대 입장을 견지해 온 교계에서는 헌재의 최종 판단 여부와 별개로 반동성애 문화에 경종을 울리며 교계의 결집을 공고히 다져 나가는 계기로 삼겠다는 구상입니다.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을 파견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반도에 격랑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쟁 소식도 시시각각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전쟁하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평화를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기를”(사 2:4) 위해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BC 4004년 10월 22일 17세기 초 아일랜드 교회의 존경받는 학자이자 성공회 신부였던 제임스 어셔(1581~1656)는 하나님은 이날 오전 9시(그리니치 표준시)에 우주를 창조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31년간 아일랜드 아마의 대주교로 섬겼으며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의 서신에 대한 연구로 유명합니다. 그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창조의 날을 계산했습니다. 그는 천지창조에서 솔로몬 왕 시기까지의 시간, 이후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바벨론 유수 기간, 그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부터 예수님의 탄생 시기까지를 합해 약 4000년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이 헤롯왕이 죽던 해인 BC 4년에 일어났기에 4년을 뒤로 돌려 BC 4004년으로 봤습니다. 그의 연대 도출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신성시되다시피 했습니다. 어셔가 지구 창조 연대를 추정한 것은 현대 지질학이 정립되기 한참 전의 일이었습니다.
1844년 10월 22일 미국의 침례교 평신도 설교자인 윌리엄 밀러의 추종자 10만명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날인 ‘속죄의 날’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재림하지 않으셨고 밀러는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믿음을 유지했습니다. 이후 밀러를 추종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생겨났습니다.
1648년 10월 24일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으로 중부 유럽의 30년 전쟁이 종식됩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소수 종교 포함)에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부여한 이 평화 조약은 전쟁 당사자들에게 분배될 교회 재산을 논의할 때 ‘세속화’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조약은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와 신성로마제국의 지배적 역할을 실질적으로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가져왔습니다. 조약은 제후들에게 완전한 영토적 주권과 통치권을 인정하고 가톨릭, 루터파, 칼뱅파에게 동등한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이는 정신적으로는 교황이 주도하고 세속적으로는 황제가 주도하는 가톨릭 제국으로서의 신성로마제국이 실질적으로 붕괴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황제와 교황의 권력은 약화되었으며 정치는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나 세속화 하면서 국가 간 세력 균형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새로운 체제를 가져왔습니다. 유럽의 근대화와 절대주의 국가의 성립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1400년 10월 25일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가 얼마 전 유명한 ‘캔터베리 이야기’ 집필을 갑자기 중단한 채 런던에서 사망합니다. 종교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의 인물들은 당대 교회를 적절하게 묘사합니다. 초서는 평민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습니다. 초서가 다루는 영역은 성경 역사 고전학 신화 기사도 점성학 의술 지리 연금술 의상 절기 음식 식물 등 너무나 방대해 이 책은 흔히 중세를 비추는 거울 혹은 중세 시대의 축약도로도 불립니다. 마지막 이야기인 ‘시골 사제의 이야기’에서는 중세의 신학적 교리를 연상시키는 죄와 참회에 관한 세부적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1466년 10월 26일 일부 기록에 따르면 네덜란드 학자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가 이 날짜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의 업적은 1세대 종교개혁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의 새로운 비평판을 편집했으며, 수도원과 교회의 부패를 풍자한 ‘우신예찬’ 등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1529년 10월 26일 토마스 모어가 영국 수상이 됩니다. 그는 저서 ‘유토피아’에서 종교의 자유를 옹호했지만 종교개혁을 강력히 반대하고 마르틴 루터와 윌리엄 틴데일 등에 반대하는 글을 썼습니다. 또 헨리 8세가 영국 교회의 최고 수장이라는 주장에 반대하고 왕의 이혼에 반대하면서 처형당했습니다. 가톨릭 대법관이었던 그는 재직 당시 6명의 개신교도들을 화형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집행한 혹독한 처벌은 당시 대법관의 의무를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만 그가 대법관이 되던 해부터 이교도 재판이 급증했지만 대부분 헨리 8세와 로마 교회와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왕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종교적 선명성을 과시하기 위해, 그리고 교황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왕이 개신교와 관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그리고 고발이 잦았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746년 10월 27일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이자 신학자인 윌리엄 테넌트가 뉴저지 대학(현 프린스턴 대학)의 설립 허가를 받습니다. 그는 1726년 자신의 아들과 다른 사람들을 목회자로 양성하기 위해 신학교로 이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이 대학의 총장으로 아론 버, 조너선 에드워즈, 존 위더스푼 목사가 취임해 학교를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1771년 10월 27일 존 웨슬리가 미국 감리교인 600여명을 감독하기 위해 영국에서 파송한 프랜시스 애즈버리가 필라델피아에 도착합니다. 그는 45년 동안 미국에서 사역하는 동안 그는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타고 약 30만 마일을 이동하며 약 1만6500회의 설교를 전했습니다. 그가 사망할 때까지 미국에는 20만명의 감리교인이 있었습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