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묵상하러 파도를 탄다’…서핑 묵상 현장을 가다

입력 2024-10-20 15:49 수정 2024-10-22 13:57
길었던 여름이 가고 선선한 가을이 되며 독서만큼이나 묵상도 제격인 계절이 왔다. 로렌스 형제는 “건강한 영성은 모든 곳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시선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상, 비일상의 모든 곳에서 신앙의 의미를 찾는 묵상이 등장하고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묵상의 세계를 3편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서핑 묵상 참석자들이 지난 7일 강원도 양양 죽도해변에서 서핑을 하고 있다.

바람 한 점 없던 10월 초, 강원도 양양 죽도해변은 파도도 없이 잔잔했다. 여름에는 사람 북적이는 서핑의 성지였지만 이날은 ‘타일러 서프’라고 적힌 서프보드에 둥둥 떠 있는 사람들 외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오늘 파도는 잔잔했어요. 무용한 시간, 그래도 될 수 있는 시간을 보냄으로써 하나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생긴 것 같아요.”, “파도를 타면서 이 넓은 바다가 하나님 창조 세계 안에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돼 하나님의 품 안에서 자유로움을 겪었어요.”

지난 7일 강원도 양양 죽도해변 앞 서핑 가게 ‘타일러 서프’ 안. 15명의 기독 청년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낮에 서핑하며 즐겼던 감상을 말씀 신앙고백과 연결해 묵상을 나누고 있었다. 기독 문화 모임 ‘샬로믹데이클럽’에서 진행한 서핑 묵상은 서핑에 온전히 몰입해 활동을 즐기고 이후 거룩한 독서라는 ‘렉시오 디비나’ 방법을 통해 침묵 속에서 신앙적 의미를 찾는 묵상의 새로운 형태다.

샬로믹데이클럽 참여자들이 지난 7일 강원도 양양 '타일러서프'에 모여 밤 묵상을 진행하고 있다.

샬로믹데이클럽 대표 김지환(37) 전도사는 “코로나를 기점으로 기존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가 생겨났다”며 “교회 안에서도 고정관념과 사고의 전환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도사는 “건강한 영성은 모든 곳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시선을 갖는 것이라는 로렌스 형제의 말과 일맥상통한다”며 “파도를 넘고 타고 해변을 지친 상태에서 바라보고 하는 모든 순간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된다”고 전했다.

삶을 누린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자 하는 청년들은 서핑 묵상에서 의미를 찾았다. 이날로 일곱 번째 서핑 묵상을 참여한다는 신명(30)씨는 “파도를 타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흐름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신씨는 “하나님이 주셔야 갈 수 있고 주시지 않으면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 파도와 하나님이 주신 기회와 닮았다”며 “우리는 인생의 파도를 하나도 맞지 않고 이곳을 벗어나게 기도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부딪혀야만 지나가고 영원할 것 같은 순간을 이겨내다 보면 그것을 즐기는 때가 온다”고 말했다.

서핑 묵상 참여자들이 지난 7일 양양 죽도해변 앞에서 서핑 전 강습을 받고 있다.

서핑 묵상 이제야 주목받게 된 걸까. 샬로믹데이클럽은 지난해 9월부터 정식 프로그램인 ‘서비스 서프’를 시작했다. 국내에서 서핑 묵상을 시작한 시점은 길지 않지만 해외에서 서핑 묵상의 역사는 깊다. 국제 비영리 서핑 선교 단체인 ‘크리스천 서퍼스’는 1999년부터 존재했다. 서핑 가능국 120여 개국 중 33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기독교인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대만, 일본에서도 10년 전 서핑 묵상, 예배를 드리기 위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가 돼서야 ‘크리스천 서퍼스 코리아’가 출범했다.

서핑 묵상과 같이 전통 교회에서 진행되던 묵상의 고정관념을 벗어난 시도는 기존 교인들에게 풍성한 경험을 제공한다. 김한나(33)씨는 “주로 골방에서 금식 기도를 했었다”며 “파도를 타면서 이 넓은 바다가 하나님 창조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돼 하나님의 품 안에서 자유를 겪었다”고 했다.

양양=글·사진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