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환자 수의 증가와 함께 유튜브에서 ‘폭식 브이로그’를 찾아서 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19일 기준 유튜브에 폭식 브이로그를 검색했을 때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은 520만회가 넘게 재생됐을 정도다.
영상을 통해 자신의 폭식 사실을 보여주는 이들의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스스로 제어하기 힘든 섭식장애를 공유하면서 위로받고 변화를 경험했다는 유튜버(2024년 9월 29일자 온라인 기사)도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폭식 브이로그를 시청하는 이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난 저만큼 못 먹는데…” 대리만족 느끼는 이들
폭식 브이로그를 본 적이 있거나 자주 본다는 이들은 ‘대리 만족’을 한 이유로 꼽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번에 먹기 힘든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는 모습에 신기함과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직장인 박모(27)씨는 “자극적이고 많은 양의 음식을 단시간에 먹는 것을 보며 놀라운 감정이 드는 한편 나는 못 하는 걸 하는 모습에 만족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조은서(24)씨 또한 “(나는) 위가 작아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는데, 특히 디저트 종류들을 한꺼번에 많이, 맛있게 먹어주니까 대리만족이 느껴졌다”며 “그렇게 보다 보면 ‘팬심’이 생겨 또 (영상을) 찾게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도 폭식 경험이 있어 폭식 브이로그에서 공감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직장인 강모(31)씨는 “극단적인 체중 감량 후 부작용으로 폭식증에 가까운 식습관을 갖게 된 적이 있는데, 그때의 내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영상에 공감이 많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심리 전문가들은 다이어트 등에 대한 사회적 강박이 커지면서 일상생활 속 스트레스를 풀고 만족감을 찾기 위해 폭식 브이로그를 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 음식이나 공포 영화를 찾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면서 “자극을 위해 폭식 브이로그를 시청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이자 임상심리사로 활동하는 나봄미디어심리연구소 조연주 대표는 “일반적인 먹방 영상과는 다르게 폭식 브이로그에서는 (본인을 향한) 가학적인 행위도 포함돼 있다”면서 “이런 영상을 보면서 식욕의 대리만족뿐 아니라 일상을 규율하는 권력과 제한에 대한 반발이 표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폭식 브이로그 시청은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퇴행적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사람 폭식 보며 쾌락·안도감 느끼는 나, 괜찮나요
좀 더 내밀한 이유를 고백한 이들도 있다. 대학생 A씨(22)는 폭식 브이로그를 보며 일종의 ‘길티 플레져’를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길티 플레져란 ‘길티(guilty·죄책감이 드는)’와 ‘플레져(pleasure·즐거움)’를 합친 말이다.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끼면서 동시에 쾌락을 만끽하는 심리 상태를 뜻한다.
A씨는 다른 이가 폭식을 하고 괴로워하거나 우울한 모습을 보면서 기쁨까진 아니지만, 위안을 얻는 자신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저 사람보다는 상황이 낫구나’라는 마음으로 영상을 찾게 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학생 B씨도 “남이 폭식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폭식증이 없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묘하게 심리적 안정감이 들었다”며 “폭식 브이로그 영상의 댓글을 살펴보면 충고를 가장해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행위를 통해 본인의 자존감을 채우려 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타인의 고통을 보며 안도감이나 자존감, 나아가 약간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정도는 심리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교수는 “사람은 누구나 이중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비교해서 어떤 기쁨이나 위안을 얻으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적절한 수준에서는 ‘자기방어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연주 대표도 “길티 플레져라는 신조어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사례들은 대부분 소소한 것들”이라며 “어린 시절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일들을 기어코 하고 마는 ‘일탈의 즐거움’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고 말했다.
폭식 브이로그를 보며 안정감을 충족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어떤 일에서 실패하거나 자존감에 위협을 느낄 때 자신보다 열악한 처지에 있는 이와의 ‘하향비교’로 불안감을 완화하고 행복감과 자신감을 고취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감정들이 단순한 느낌을 넘어 부적절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는 있다. 곽 교수는 “이런 감정을 너무 즐기고 자제하지 않으면 타인을 비하하는 등 범법 행위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모든 쾌감은 중독 위험 있어…자신만의 기준·절제 필요”
폭식 브이로그에 무분별하게 빠져들어 시청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곽 교수는 “인간에게 쾌감을 주는 것들은 모두 중독의 위험이 있다”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황에서만 본다든지,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통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대표 역시 “기본적으로 폭식은 먹는 것에 대한 조절 능력이 상실된 모습”이라며 “‘폭식 브이로그’의 경우 출연자와 시청자가 서로 긍정적인 감정과 행복감을 주고받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어 “시청자들의 정서 반응을 고려해 자극성은 줄이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브이로그의 유행이 변화하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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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기자 pomme@kmib.co.kr 이가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