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말 튀니지 혁명을 시작으로 아랍 전 지역으로 확대된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이 10년 이상 지난 지금 실패로 귀결되는 모양새댜. 이집트·리비아·시리아 등이 쿠데타와 내전에 시달린 데 이어 왕정 국가에서 시범적으로 시행됐던 민주주의 제도조차 사라지고 있다. 민주주의 모범생으로 꼽힌 튀니지조차 독재로 회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은 15일(현지시간) 슈라위원회 직선제 폐지 국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슈라위원회는 국왕에게 입법·예산 등에 대해 조언하는 기관이다. 절대왕정 국가인 카타르는 국제사회를 의식해 슈라위원회 위원 중 3분의 2를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제도를 2021년 시작했다.
알사니 국왕은 “카타르 국민과 협의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며 카타르 내 선거 과정을 발생한 긴장을 줄이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AP통신은 “이것은 미국이 9·11 테러 이후 중동에서 추진해온 민주적 개혁 노력과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이 지역 국가들 사이에서 민주주의 희망이 높아졌다”며 “하지만 카타르의 조치는 걸프 아랍 국가들의 또 다른 후퇴를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아랍의 봄 발원지인 튀니지에선 야권 탄압으로 민주주의 제도가 무너지고 있다. 지난 6일 튀니지에서 열린 대선에선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이 90.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사이에드 대통령이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된 것은 주요 야권 정치인들이 모두 수감됐기 때문이다.
앞서 온건 이슬람 성향의 야당인 엔나흐다당의 라체드 간누치 대표를 비롯해 정부에 비판적인 야권 인사가 최소 8명이 축출되거나 투옥돼 대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대선 투표율도 28.8%로 아랍의 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사이에드를 두고 "새로운 독재자이자 새로운 벤 알리(아랍의 봄으로 축출된 튀니지 전 대통령)"라고 비판했다.
카타르와 같은 절대왕정 국가인 쿠웨이트는 지난 5월 의회를 최대 4년간 해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쿠웨이트 의회는 50명의 선출직과 임명직인 내각 구성원(최대 16명)으로 구성된다. 미샬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쿠웨이트 국왕은 해산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민주주의의 오용으로 인해 국가가 파괴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카타르·튀니지·쿠웨이트뿐 아니라 아랍의 봄이 활발했던 국가들 대부분 이미 군사독재 체제가 들어서거나 내전으로 나라가 황폐해졌다. 대표적인 국가가 리비아다. 2011년 리비아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무하마르 알 카다피가 축출된 이후 나라는 두 쪽이 났다. 1·2차에 걸친 내전은 2020년에야 휴전으로 끝났지만 곳곳에서 군벌 간 충돌이 벌어지는 등 여전히 리비아 정부는 정상적인 기능을 하진 못하고 있다. 시리아 민주화 운동도 내전으로 이어져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이집트는 쿠데타로 다시 군부독재 정권이 들어선 상황이다. 2011년 민주화 운동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고 이듬해 이슬람주의 정당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무르시 대통령은 이슬람 근본주의 색채와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 헌법 개정 시도 이후 지지율이 폭락했고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뒤집어버렸다. 이후 쿠데타 주역인 압델 파타 엘 시시 원수가 대통령직에 올랐고 현재도 권좌를 유지하고 있다.
크리스틴 스미스 디완 아랍걸프연구소 연구원은 AP에 “우리는 한동안 이런 종류의 후퇴를 목격해왔다”며 “아래로부터 더 많은 대표성을 요구하는 요구가 있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순간은 지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