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러시아의 대문호인 괴테와 도스토옙스키, 바로크 회화의 거장 카라바조와 렘브란트, ‘음악의 아버지’ 바흐에겐 공통점이 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에서 직접적 영감을 받은 명작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와 렘브란트의 ‘성 도마의 불신’ 및 바흐의 ‘요한 수난곡’이 그렇다.
요한복음의 어떤 점이 세계 정상급 예술가인 이들을 매료시켰을까. 서구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요한복음의 입문서인 ‘요한복음과 만나다’(비아)를 최근 펴낸 외르크 프라이(62) 스위스 취리히대 신학부 석좌교수를 지난 14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만났다. 독일 저명 신학자 마르틴 헹엘의 제자로 30여년간 요한복음을 연구한 신약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인 프라이 교수는 대전 제자들감리교회(김동현 목사) 초청으로 연세대 BK21 강연 및 일선 교회 설교차 방한했다. 이번이 첫 방문으로 평소 매운 음식을 즐긴다는 그는 “한국 음식과 문화, 친절한 사람들이 인상적”이라며 미소지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세계서 손꼽히는 ‘요한복음 전문가’다. 요한복음 연구 계기는.
“은사인 헹엘 교수님과의 우연한 인연으로 시작했다. 원래 독일 튀빙겐대 신학부 졸업 후 사도 바울이나 유대 문헌을 파고들려 했는데 교수님이 ‘요한복음 등 요한 문헌을 연구해보라’고 연락해왔다. 헹엘 교수의 제안에 따라 ‘요한복음의 종말론’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예나대와 뮌헨대, 지금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요한복음을 연구했다.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시대가 흘러도 녹슬지 않는 풍부하고 깊은 메시지가 있어서다. 지금도 요한복음에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저서 중 두 번째 한국어판이다. 이번 책을 쓴 배경은.
“이전에 한국 독자에게 소개된 ‘요한복음의 신학과 역사’는 미국 예일대 강연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신학자를 위한 전문 서적이다. 이번엔 예수와 기독교에 관심 있는 대중을 위한 책을 선보이고자 했다. 여러 각주 없이도 명확한 정보와 접근성 높은 소재로 요한복음의 정수를 담아내는 데 특히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해 독일의 한 팟캐스트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대 등에서 강연한 내용 등이 바탕이 됐다.”
-대중 친화적인 이번 책으로 요한복음의 어떤 면을 부각하고 싶은가.
“책 제목(원제 Invitation to John)에 ‘초대’(Invitation)란 표현을 썼다. 책이 서구 지성사에 굉장한 영향을 미친 요한복음에 독자를 초대하는 일종의 ‘초대장’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강권하거나 교리를 전하는 대신 요한복음의 세계를 소개하며 넌지시 메시지를 던졌다. 각종 문화·예술의 원천인 요한복음의 핵심,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다룬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죽으면 끝이고 실패라 생각하나 부활한 예수는 이 공식에서 벗어난다. 십자가 처형은 그에게 끝이 아닌 시작이다. 실패 아닌 또 다른 승리다. 이 사건은 절망과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이 동행한다는 교훈도 전한다. 요즘처럼 잔인하고 냉혹한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다.”
외르크 교수는 “밤에도 서울 도심이 정말 환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야근하는 근로자가 많아서’라고 들었다”며 “한국이 ‘경쟁적인 사회’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성공하지 않으면 모두 루저(패자)’란 인식이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세상의 시각에서 예수는 루저였지만 하나님에겐 그렇지 않았다고 요한복음은 증언한다”며 “한국 독자에게 이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요한복음 속 예수의 비유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좋은 비유가 많아 고르기가 어렵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선한 목자의 비유’다. 어린 시절 부모님 침실에 양을 어깨에 걸친 선한 목자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이를 보며 친근한 감정을 느꼈다. 커서는 이 비유가 등장하는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 큰 위로를 얻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느낄 때 하나님이 강한 손으로 보호해준다는 내용이다. 양의 구원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는 예수에게서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본다.”
-스승 헹엘 교수의 조언 “신약성경만 아는 사람은 이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를 금과옥조로 삼고 요한복음과 함께 그리스·로마 및 유대교 문헌도 깊이 연구했다.
“교수님의 조언은 내 학문의 길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요한복음 연구는 성경뿐 아니라 사해사본과 유대교 지혜 문헌, 파피루스와 비문, 로마 역사서와 영지주의 저술 등도 살피는 흥미로운 여정이었다. 신약성경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성경이 쓰인 당시의 사회·문화적 환경, 즉 유대교와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나온 거다. 당대의 시대상을 알아야 성경 저자가 무엇을 전제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신약성경의 힘을 알고자 한다면 주변의 이야기를 잘 알아야 한다.
물론 성경을 연구하지 않는 일반인이 이를 다 파악하는 건 무리다. 그렇지만 신약 성경 시대의 작품과 시대상을 인지만 해도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단순 사회상을 영원한 진리로 오인하는 ‘잘못된 일반화’도 방지할 수 있다. 여성의 침묵에 관한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 등이 대표적 사례다.”
-종교개혁 주일(27일)을 앞둔 한국교회에 전할 말이 있다면.
“교회가 쇠퇴하는 구 ‘종교개혁의 나라’에서 온 신학자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지난 몇 세기 동안 서구 신학에서 여러 실수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 공로 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의로움을 얻은’ 종교개혁의 핵심 메시지는 아직도 유효하다. 작금의 교회와 신학자 역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세상에 크게 외쳐야 한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시대에 꼭 필요한 건 은혜의 메시지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