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 매니저 구함. 조직 관리와 소통 능력 우수자 및 엑셀 등 사무용 프로그램 사용자 우대. 반드시 의로운 사람일 것.’
구인 공고 속 익숙한 표현 가운데 생경한 형용사가 보인다. 실생활에서 좀체 쓰이지 않는 ‘의롭다’는 단어다. 이 표현이 낯선 건 우리만이 아니다. 기독교 문화인 영미권에서도 ‘의롭다(righteous)’를 활용하는 일상 표현은 드문 편이다. 미국 노던신학교 신약학 교수인 저자는 “실제 어디서도 이런 구인 공고는 볼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단어 자체가 “옛날 킹제임스성경식 표현” 같은 데다 현대 영어권 사용자 대다수가 이를 ‘종교적 단어’로 인식해서다.
신약학자인 그는 기독교적 가치가 담긴 이 단어가 구시대적 표현으로만 치부되는 세태에 아쉬움을 내비친다. 성경 속 ‘의롭다’는 “깨끗한 양심으로 옳게 행하며 세상의 정의가 이뤄지는데 마음을 쓰는” 사람을 한 단어로 적확하게 묘사하는, 다분히 실용적인 표현인 까닭이다. 최근 표현 가운데는 ‘진실한’ ‘완전한’이란 뜻의 ‘인테그리티(integrity)’가 가장 가까운 단어라고 봤다.
“주변 사람들이 성경을 삶과 무관하거나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 여길 때마다 마음이 답답했다”는 저자는 “성경, 특히 신약에서 등장하는 사랑과 평화, 소망과 우정, 관대함 등은 하나님의 영감에서 나온 단어이자 지금도 여러 사람을 이끄는 매혹적인 단어”라고 했다. 그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의미가 담겼지만 지나치게 익숙해져 무미건조한 ‘기독교 언어’가 돼버린 이들 단어의 본뜻을 보여주고자” 이 책을 썼다.
책에 소개된 신약 단어는 의를 포함해 복음 십자가 믿음 소망 평화 종교 거룩함 등 15개다. 저자는 신약 성경 본문과 해당 본문 저자가 살았던 1세기 그리스·로마의 사회·문화 등을 토대로 이들 단어의 참뜻을 밝히고 현대인이 성찰할 지점을 제공한다. 성경 속 ‘사랑’의 명확한 의미를 추출하기 위해 이 표현이 자주 쓰인 요한1서를 근거로 단어의 ‘정경(正經)·문학·역사적 맥락’을 살피는 식이다.
책에서 재조명된 신약 단어 가운데는 현대인이 알고 있는 사실과 거리가 먼 원뜻을 가진 경우도 적잖다. ‘의’ 역시 학자의 관점에 따라 ‘사회적 정의’나 ‘개인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성품적 특성’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신구약 성경은 일관되게 의를 “자비와 관용, 인내와 친절이 포함된 개념”으로 소개한다. 한쪽의 의미만 담긴 “냉철한 의나 분노하는 정의”로 성경적 의를 해석하는 건 어불성설이란 이야기다.
일종의 기독교 전문 용어로 사용되는 ‘복음’도 당대엔 ‘좋은 소식’을 뜻하는 일상 용어였다. 초대교회 성도에게 이 단어는 “절대자이자 구원자인 신이 세상의 압제자에 대항해 정의와 평화를 가져온다”는 대변혁의 소식 그 자체였다. 이런 면에서 “종교적 개종과 내세에만 연결된” 현재의 뜻은 편협한 해석이라는 게 저자의 견해다. “증거가 결여된 신념이나 의견에 대한 통칭”으로 오독되는 ‘믿음’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우리 안에 계신 예수와 함께 사는 삶’으로 해석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 은혜로 주님과의 유대에 참여하는 것”이지 “인간이 붙잡는 이상한 신념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들에 비교해 ‘소망’은 최근 정치권과 대중문화에서 ‘바람’이나 ‘욕망’의 의미로 종종 사용됐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이 단어를 선거 운동 주제로 삼은 바 있다. 하지만 데살로니서전·후서를 위시한 성경은 소망을 “종일 속삭이는 기도”이자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며 믿음으로 감수하는 작은 위험이자 단순한 신뢰”란 의미로 기록했다.
“고대의 낯선 문자”로 구성된 신약성경 속 핵심 단어를 21세기에 통용되는 표현으로 옮겨준 친절한 책이다. 그간 화석화된 신약의 언어를 생동하는 단어로 바꿀 수 있는 비결도 담겼다. “시간을 들여 신약의 단어가 오늘날 우리 삶에 주는 역동을 성찰해보라. 그럴 때 이들 단어는 ‘생명의 말씀’이 된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