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일본에 알려온 일본인 번역가가 한강 작품의 핵심은 “최대 위기에도 인간의 존엄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흰’ 등을 번역한 사이토 마리코(64)씨는 17일 아사히신문에 실린 기고문에서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언급하며 “한강의 작품 속에는 개인의 상처와 역사의 상처가 불가분으로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사이토씨는 “한강 작가는 결코 국적이나 출생지에 얽매이지 않는다”면서도 “한강 작가가 태어난 땅에 축적된 원통한 죽음과 봉인된 목소리에 접근한 것은 필연일 것이다. 그것을 한국 한 나라가 아닌 인류의 경험으로 쓴 것에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강 작품의 핵심은 “비참한 일이 있었음을 알리는 게 아니라 최대의 위기 시에도 인간의 존엄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한림원이 한강 작가 시상 이유로 든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 인간의 생명의 덧없음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에 대해서는 “매우 한국스럽다고 생각했다”며 “‘역사’와 ‘시’는 한국 문학의 키워드, 아니 한국 자체의 것이라고 해도 좋을지도 모른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시적 산문’이라는 평을 두고는 “단지 어휘나 표현이 시와 같다는 게 아니다”라며 “삶과 죽음의 경계, 꿈과 현실의 경계를 돌파하는 섬세하고 강인한 문체가 평가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강 작가가 이번 수상 소식을 접한 뒤 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무슨 잔치를 하느냐며 기자회견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반응을 보인 것과 관련해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며 “그래서 축하의 말을 한 뒤 각자 이 세상의 잔혹한 곳에 마음을 모으고 싶다”고 밝혔다.
사이토씨는 니가타현에서 태어나 메이지대학을 다니던 도중 동아리 활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연세대 어학당에서 유학했으며 박민규 작가의 소설 ‘카스테라’ 등 많은 한국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해왔다. 2020년에는 제18회 한국문학번역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