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성자이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가장 분명하게 계시됐고 그가 구원의 길을 여셨다는 것을 믿기에 예수를 유일한 구원자로 믿는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선교를 수행할 때 항상 그분이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선교의 모델을 따라 선교를 수행해야 한다. 특별히 그분이 왜 오셨는지, 예수께서 오신 목적과 연관해 교회에 남겨주신 과업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바른 선교 방향 설정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해 기독교는 2000년 동안 개인과 인류의 구원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1952년에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개념의 태동과 함께 예수께서 오신 목적이 점차 다른 관점에서 해석되기 시작했다. 그 다른 관점은 주로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컬 진영으로부터 나왔다. 에큐메니컬 진영은 예수께서 오신 목적을 비인간화된 세상의 인간화(1968년 제4차 WCC 웁살라 총회), 불의한 구조적 모순을 척결한 해방, 세상의 모든 문제 해결 등으로 해석했다. 이러한 관점들은 예수의 오신 목적을 사회 전체의 인간화, 해방, 평화, 복지 등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예수 자신은 과연 자신의 오신 목적을 무엇이라 말씀하셨을까. 첫째,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막10: 45)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대속물이란 ‘rutron(뤼트론)’으로 속박에서 풀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큰 속박인 죄 문제 해결을 위한 속죄양이 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둘째, 예수께서는 오병이어 기적 후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는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 자신이 온 목적은 바로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임을 말씀하셨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자신을 왕 삼으려는 군중을 피하시고 오히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영생을 위한 대속물로 주셨다.
셋째, 예수께서는 자신을 붙잡으면서 다른 동네로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을 향해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해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눅 4: 43)고 하신다. 실제로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눅4: 44, 막1: 38)고 누가는 기록했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은 사람들의 기대처럼 이스라엘의 정치적 해방과 독립, 가난 해결, 병 치유나 귀신 축사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WCC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께서 인간화를 위해 오셨다면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 아니라 더 오래 살며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했어야 했다.
이상과 같은 말씀들을 볼 때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선교 그리고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을 실행하는 선교는 인간화가 아닌 영혼 구원에 우선성을 두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물론 교회는 인간화를 위한 활동에도 열심을 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WCC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구령을 위한 복음화와 해방을 위한 인간화를 똑같이 중요한 목표로 삼는 통전적 선교의 관점은 예수의 가르침과 어울리지 않는다.
◆안승오 교수는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과 미국 풀러신학대 선교대학원을 마쳤다. 필리핀 선교사로 활동했고 현재는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과 영남신대 선교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