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인사만 해도 한국말 잘한다고 칭찬받고, 매운 떡볶이와 김치를 잘 먹는다고 놀라는 모습을 자주 봐요.”
아이린(15)양은 카메룬 출신 부모가 한국에 정착한 뒤 태어났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는 검은 피부색과 땋은 레게머리 뒤에 여느 한국 청소년들과 다름없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지나가는 행인이 내가 한국말을 하면 놀라지만 이제는 그냥 포기하고 해명도 안한다”며 “겉모습만 보고 자신을 외국인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같은 나라에서 온 알리(31)씨 역시 7년째 한국에서 생활하며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하면 가난하고 마른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키가 크고 건장한 나를 보고 아프리카 사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사자 타고 왔냐’ ‘코끼리랑 같이 살았냐’는 황당한 질문을 받은 적 있다.
양회성(위디국제선교회) 선교사는 “이런 반응이 바로 ‘착한 차별’이자 ‘불편한 관심’”이라며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고정관념이 이주민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15일 가평 필그림하우스에서 열린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주최 ‘제22회 한국선교지도자포럼’에서 ‘이주민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대담’이 진행됐다. 이번 포럼은 ‘이주민 선교’를 주제로 14일부터 사흘간 열린다.
양 선교사는 네 명의 이주민 청년과 함께 각자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카메룬 출신 아이린양과 알리씨,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온 이마이(26) 전도사, 한국 남성과 결혼해 세 자녀를 둔 미국 출신 예나(35)씨가 대담에 참여해 실제로 겪은 문화적 차이와 편견을 공유했다.
대담은 음식, 날씨 등 다양한 주제별로 관련 영상을 본 후 각자의 경험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미디어에서 다문화 가정을 가난한 이미지로 묘사하며 편견을 강화하는 문제도 지적됐다. 결혼 이후 한국에 정착해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있는 예나씨는 “다문화 가정은 갈등이 많고 외국인 아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이 느껴진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IFMM과 ISF에서 사역하는 지문선 목사가 참석자들의 문화 인지도를 테스트하며 이주민 사역에서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주민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문화, 종교, 세계관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라며 선교가 타 문화를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라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 안에서 복음을 나누는 과정이 되어야 함을 지적했다.
이날 포럼의 주제인 ‘이주민 문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은 이주민 사역에서 실질적인 선교 전략과 실행 계획을 논의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김영산 고려신학대 선교목회학대학원 교수는 ‘이주민 선교를 위한 전이해와 타문화를 이해하는 태도’를 주제로 발제했다.
김 교수는 “문화적 소통을 위해서는 서로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며, “한국 사회가 다문화 시대로 접어든 만큼 교회는 문화 간 소통 능력인 ‘선교적 문화지수(MCQ)’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주민 선교에서 자문화 중심주의나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한 ‘성경적 문화 변혁관’을 제시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비성경적 문화는 변혁하고, 자신의 습관과 문화에서 비성경적 요소를 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어서 이주민 교회가 수행해야 할 세 가지 주요 역할로 ‘안식처’ ‘모국어 교제처’ ‘진리의 학교’를 제시했다. 이주민 교회는 이주민들에게 휴식과 교제의 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피난처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각자의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이주민들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언어와 문화를 교육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포럼에서는 ‘포스트 로잔과 이주민 선교’를 주제로 제4차 로잔 대회에서 강조된 디아스포라 선교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이주민 선교의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를 위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이주민 선교 방향성을 모색하고, 유학생 선교 등 구체적인 대응 방안이 다뤄졌다.
16일에는 정용구(KWMA) 선교사가 ‘이주민 선교 액션 플랜 도출과 연합’에 대해 발표하며 지역교회와 선교단체 간 협력 방안을 제안한다. 정 선교사는 “테이블 논의를 통해 나온 다양한 의견들이 구체적인 실행 지침으로 정리돼 한국교회의 이주민 선교 사역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포럼에서 논의된 실천적 로드맵은 선언서 형태로 발표될 예정이며 이주민 선교 사역에 대한 구체적 실행 방안을 제공할 계획이다.
가평=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