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한강기념관‘ 건립을 마다한 진짜 이유는?

입력 2024-10-14 17:15 수정 2024-10-16 10:17

‘한강 작가가 기념관 건립을 굳이 꺼리는 이유는?’

국내 첫 노벨문학상 수상 쾌거를 이룬 한강 작가가 한강기념관 신축이나 한강문학관 건립 등 자신의 이름을 딴 대형 기념사업을 극구 사양한 것으로 14일 전해졌다.

평범한 이웃이 갑자기 주검으로 실려 간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소년이 온다’ 소설을 집필해 노벨상을 받았는데 그를 구실로 잔치를 열 수 없다는 애절한 심경이 기념관·문학관 건립 거절의 배경이 된 것으로 해석된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이날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한강 작가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해산 토굴’에 유정아 문화도시조성과장을 보내 세계적 문학가 반열에 오른 딸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사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해산토굴은 아버지 한 작가의 집필 공간이다.

강 시장은 유 과장 파견에 앞서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기 위한 가칭 한강문학관 건립 추진을 전제로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과 예산지원 문제 등을 상의한 결과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정작 한강 작가 본인이 아버지를 통해 부정적 의견을 내놓아 이를 보류했다고 설명했다.

한강 작가의 부친인 한승원 작가가 “전쟁으로 주검들이 실려 나가는 데 무슨 잔치를 여느냐? 큰 기념관이나 화려한 축하 잔치, 명칭에 한강이라는 이름 들어가는 건축물을 원하지 않는다”는 딸의 입장을 유 과장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것이다.

강 시장은 광주가 책을 많이 읽는 도시가 됐으면 한다는 한 부녀 작가의 의사에 따라 책 읽는 문화 확산을 우회적으로 꾀하는 간접적 방식의 기념사업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제안에 따라 한강 작가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광주 중흥동에 광주 인문학 산책길을 조성하고 가칭 ‘소년이 온다 북카페’ 운영을 구상 중이다.

강 시장은 광주시민이 책 읽는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시민 1명당 1권의 책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바우처 사업’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 시장은 또 상무지구 옛 상무소각장 부지에 건립 중인 광주대표도서관과 하남도서관, 유치를 추진하는 국회도서관 광주분원 등 공공 도서관 확대도 추진할 방침이다. 광주 인문 르네상스 추진위를 구성해 가칭 문화콤플렉스 조성, 독립서점 활성화, 2026년 전국도서관 대회 개최도 추진한다.

한승원 작가는 광주시 유정아 과장에게 “한강은 내 딸이 아니라 이미 독립적인 개체가 됐다. 장흥군에서도 (한승원·한강) 부녀 문학관 건립을 거론했는데, 딸은 모든 건물 등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승원 작가는 광주시가 청사 외벽과 금남로 전일빌딩345 외벽에 내건 ‘한강! 고맙다! 기쁘다! 5월, 이제는 세계정신!’이라는 축하 현수막에는 화려하거나 소란스럽지 않고 간결해서 좋다는 의견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일빌딩245는 5·18민주화운동 때 이곳으로 피신한 시민들을 향해 계엄군 헬기사격이 이뤄진 5월 사적지다.

광주도시공사가 사들여 5·18 기념과 문화콘텐츠 창작 공간으로 새롭게 꾸민 이 건물에서는 수년 전 245개의 탄흔이 외벽 등에서 발견된 바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실마리가 된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총칼을 앞세운 계엄군의 군홧발에 밟히고 총에 맞아 숨진 13살 소년 ‘동호’와 주변 인물을 통해 당시의 참상을 생생히 그려냈다.

5·18 민주화운동 때 교련복을 입고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숨진 광주상고 1학년 문재학 군이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 계엄군에 의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했다.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에도 1980년 5월 27일 새벽 작전명 ‘화려한 휴가’에 나선 계엄군과 시민군 간 5·18 최후항쟁이 벌어진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기 위해 건물 안에 남아있다가 계엄군 총탄에 맞아 숨졌다.

강 시장은 “‘소년이 온다’를 통해 5·18을 세계에 부각한 한강 작가는 지역적 사안을 인류 보편적 가치로 길어 올렸고 모두의 공감을 끌어냈다”며 “5·18 정신 헌법 전문수록 개헌을 적극 추진해 오월 정신이 세계로 확산하고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확고하게 정착되는 길을 닦겠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