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톡]성지의 아랍 기독교인 19만명 “이스라엘만을 위한 기도의 한계”

입력 2024-10-14 15:42 수정 2024-10-14 18:33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전산 전경. 한 가운데 유대 성전을 허물고 지은 모스크가 보인다. 국민일보DB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로 시작된 전쟁이 해를 넘겨 주변 국가로까지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의 시작은 하마스의 만행 때문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차별 폭격과 민간인 사상자 증가로 ‘정의로운 전쟁’을 논할 수 없는 지경이 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성지에 유대인에 의한 새 질서를 허락해 달라는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스라엘만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가 뭘까요.

최근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기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썼습니다. 중동 전문가인 인 교수는 남서울교회 집사이기도 합니다.

글의 한 대목입니다.

“서안지구에 출장 갈 때 시간이 나면 간혹 들르는 마을이 있다. 타이베(Taybeh)다. 작은 도시지만 아름답고 정갈하다. 그런데 특이하다. 팔레스타인 한복판인데 모스크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아름다운 교회들이 곳곳에 고즈넉하게 서 있다. 무슬림의 땅 같지 않다. 예수를 믿는 아랍인들이 신앙을 지키며 살아온 곳이다. 성조지교회에서는 아랍어 찬양과 성경 봉독 소리가 수백 년 동안 끊이지 않았다.”

요단강 서안이나 가자 지구 같은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예수를 구주로 믿는 이들의 신앙 공동체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인 교수는 이스라엘 기독교인 통계도 소개했습니다. 이스라엘 중앙통계청에 따르면 이스라엘 기독교인 숫자는 2022년 기준 18만5000명인데 이는 전체 인구의 1.9%라고 합니다. 서안과 가자지구 등 팔레스타인 지역은 2015년 기준 기독교인이 5만명에 조금 못 미치지는 수준이죠. 이것만 놓고 보면 유대인 크리스천이 많아 보이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내 기독교인 중 75.8%인 14만여명이 이스라엘에 사는 아랍인입니다. 예수가 자라신 나사렛 같은 아랍 마을에서 2000년 가까이 신앙을 지켜온 믿음의 후예들이라는 게 인 교수의 지적이었습니다.

결국 유대인 중 기독교인은 4만5000여명이지만 아랍인 기독교인은 19만명을 웃돕니다. 아랍인 크리스천이 유대인에 비해 4배 이상 많은 셈입니다.

종교적 선과 악 구도만으로 이번 전쟁을 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코로나19 직후였던 2022년 5월 이스라엘에 출장 갔을 때 일입니다.

팬데믹 이전 인파가 넘쳐나던 예루살렘 구도심은 무척 한가했습니다. 좁은 골목에서 아랍인들과 차도 마시고 대화도 할 여유가 있었죠. K컬쳐에 관심이 많다는 청년 A도 그 골목에서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전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나처럼 한국을 좋아하면서 예수를 믿는 내 친구 B에게 한국의 성지순례객들이 ‘이스라엘만 복 받아야 한다’ ‘성지는 이스라엘의 것이다’ ‘아랍인은 떠나라’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친구가 크게 상심했었다.”

‘이스라엘만을 위한 축복’을 바랐던 한국인 성지순례객들의 눈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역만리 형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같은 크리스천에게 할 수 있는 말이었는지 이제라도 되묻고 싶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 전 세계 크리스천들은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전 세계 크리스천이 인종과 피부색에 따라 차별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이스라엘방위군(IDF)이 2022년 5월 경계 근무를 위해 헤브론 막벨라굴로 이동하고 있다. 국민일보DB

다시 인 교수의 글입니다.

“(성지에) 현존하는 분쟁과 전쟁의 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 모여야 한다. 어려움을 겪는 분쟁의 땅에 그리스도인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거신 아들 하나님의 마음에 함께 한다면 말이다. 물론 정치적인 견해와 입장에 따라 이스라엘을 지지할 수 있고 팔레스타인에게 동정심을 더 둘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의 시선은 결국 예수를 좇아야 하지 않을까. 그분이 이 땅에 사람의 아들로 오신 이유를 조금만 묵상해보면 유대인에 대적하는 아랍인을 멸절시켜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과연 예수 그리스도라면 지금 이 현실에 대해 뭐라 말씀하셨을까요.

‘한국피스메이커’ 이사장 이철 목사는 14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같은 선교 대상일 뿐 한국의 기독교인이 나서서 더 애정해야 할 곳은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사실 유대인은 예수를 핍박하다 십자가형에 처했고 무슬림 또한 기독교인을 핍박했다. 유대교냐 이슬람이냐의 차이일 뿐 우리에겐 모두 선교 대상이다. 이스라엘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기독교인과 가깝다는 왜곡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이스라엘만을 위한 기도나, 팔레스타인을 위시한 이웃 이슬람 국가만을 위한 편향된 기도는 하나같이 무의미하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크리스천이라면 결국 성지와 그곳을 둘러싼 이웃 국가들 사이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게 맞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할 일은 평화의 기도 뿐이다.”

원로목회자의 조언을 들으며 이런 성경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시34:14)

전쟁을 통한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역사가 증명한 일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할 일은 결국 ‘오직 평화’만 바라는 것, 그것 하나뿐 아닐까요.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