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도에서 전해온 전도 이야기(18) “살다 살다 목사님 돈을 받아보네요”

입력 2024-10-14 09:47

변상호·보길도 동광교회

낙도에서 이루어지는 목회 사역에도 나름대로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꼭 물질이 필요하다고 해서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농촌 목회자의 자세에서 벗어난 일입니다. 하지만 농촌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전도해야 할 상황에서는 늘 넉넉히 베풀고 섬기는 일에 인색하지 않아야 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빌립보서(4:8) 말씀처럼 ‘참되고 고상하고 옳고 순결하며 아름답고 존경할 만한 것들을 위해’ 말입니다.

섬에서 전도가 이어지려면 동네 사람들의 대소사도 잘 알고 챙겨야 합니다. 특히 상을 당한 이웃이나 자녀 결혼, 병원에 입원하는 이웃을 무심히 넘기지 말아야 하는데 경조사에 함께하기 위해서는 물질 투자가 부담될 때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농어촌 목회자는 이런 일에 사용될 물질도 평소에 준비하고 관리하다가 전도가 이루어지는 순간에는 주저 없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 비용을 말씀드리기에는 다소 결례가 될 수 있지만 저의 경우에는 부의금이나 축의금의 경우 10만원 정도가 섬마을 기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름 철저하게 준비해 장례식과 결혼식은 가능하면 인편에 보내고 입원 환자는 언제나 직접 찾아뵙고 문병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광웅슈퍼 어르신이 갑자기 입원을 하셨습니다. 섬에서 육지로 문병을 가려면 왕복 배를 타야 하고 차량 기름값 등 경비가 소요되지만 그래도 전도 대상자께서 입원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더 긴장해 기도하면서 달려갑니다.
50년이란 긴 세월을 휠체어에 앉아 살아오신 가련한 할머니를 하나님은 어떻게 사용하실지 기대하며 약한 자를 들어쓰시는 그분을 오늘도 믿고 신뢰하며 그 선하심을 복음의 붓으로 그려봅니다.

어르신은 까칠한 성격이긴 하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습니다. 가끔은 너그러운 마음이 부족해서인지 많은 이웃들은 어르신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문병 가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 어르신께, 더욱이 평소 예수쟁이를 노골적으로 싫어하시는 어른께 동네 목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문병을 오자 어르신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싫지 않은 표정을 나타내시며 먼 길 왔다며 덥석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저는 입원비에 보태시라 봉투를 건네드렸는데 어르신은 ‘평소 목사님을 잘 대해 주지도 못했는데 미안하다, 절대 못 받겠다’ 하시며 한사코 거절하면서도 “내가 살다 살다 목사님 돈도 받아본다” 하셨습니다. 그런 어른께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가 병문안 오면 반드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제가 기도할 테니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저는 그렇게 기도를 시작해 간절하게 어르신이 걸어오신 인생길을 믿음의 선진들의 길에 비유하며 위로했고 축복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남생 처음으로 기도를 받아본 어르신은 얼굴이 빨개지시며 안절부절못하셨습니다. 저는 어르신께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50년간 휠체어에 앉아 살아오신 부인 되시는 할머니 소원이 교회 나가는 건데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그 소원 좀 들어달라”고 간절히 부탁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평소 같으면 펄쩍 뛰면서 당장 돌아가라고 고래고래 소리치시던 분이 “한번 생각해 보겠다” 하시면서 병원 문 앞까지 배웅을 해주셨습니다.
이 약을 한 보따리로 드시는 할머니를 위한 전도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닌 주님이 하시기에 저 약이 성경의 신약과 구약으로 바뀌시기를 기도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새벽 첫배로 나갔는데 허기가 져서 짜장면을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동네 사시는 네 분의 어르신이 식사하다가 저를 보면서 “목사님, 힘이 없어 보입니다” 하며 아는 체하셨습니다. 고향을 찾아온 출소자 형제를 정착시키려는 저에게 “목사님 동네로 데려가시오” 하면서 그렇게 달려들던 분들이기에 얼른 그분들 식사비를 계산하고 나오는데, 한 분이 눈치를 채시고 “왜 우리 밥값을 내느냐”며 “살다 살다 목사님한테 점심을 얻어먹네” 하십니다.

전에도 전도를 방해하던 분들의 식사비를 여러 번 지불했는데, 오늘도 또 그렇게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섬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