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로 옮겨온 베로나 ‘투란도트’… ‘전통적 연출’ 오페라의 아름다움

입력 2024-10-14 05:00 수정 2024-10-14 09:50
지난 12일 KSPO돔 무대에 오른 오페라 ‘2024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공연. 솔오페라단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베로나)은 오페라 애호가들의 성지로 꼽힌다. 작곡가 베르디 탄생 100주년이던 1913년 베로나의 로마 시대 원형 경기장에서 ‘아이다’를 올리며 시작된 페스티벌은 제 1·2차 세계대전 때 중단된 것을 빼고는 매년 6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열린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작곡가인 베르디와 푸치니의 작품을 주로 선보이는데, 매년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베로나의 오페라가 올해 서울 무대로 옮겨왔다. 바로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돔) 무대에 오른 오페라 ‘2024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서울 공연이다. 19일까지 공연되는 베로나의 ‘투란도트’는 2010년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겸 오페라 연출가 고(故) 프랑코 제피렐리가 연출과 무대 디자인을 밑은 버전이다. 제피렐리는 앞서 1980년대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투란도트’를 공연하며 연출 콘셉트를 조금씩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베로나 ‘투란도트’ 서울 공연의 음악은 베로나 음악감독 다니엘 오렌이 뉴서울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위너오페라합창단과 송파구립소년소녀합창단 등 대규모 합창단을 이끌었다.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돔) 무대에 오른 오페라 ‘2024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서울 공연. 솔오페라단

푸치니의 유작인 ‘투란도트’는 중국을 배경으로 남성을 증오하는 냉혹한 공주 투란도트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투란도트의 수수께끼를 풀어 사랑을 쟁취하려는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다. 칼라프를 사랑하는 시녀 류의 희생 덕분에 투란도트의 얼음같은 마음이 녹게 된다. 이날 투란도트 역의 소프라노 옥사나 디카, 칼라프 역의 테너 마틴 뮐레, 류 역의 마리안젤라 시칠리아는 뛰어난 가창력과 표현력으로 객석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특히 3막에서 마틴 뮐레가 유명한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말라’(네순 도르마)를 불렀을 때는 관객의 환호가 터져나왔다. 공연에 앞서 우려가 제기됐던 음향은 성악가들이 직접 마이크를 차는 대신 공중에 마이크를 설치한 덕분에 관객이 노래의 섬세한 울림을 느끼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중국풍 스펙터클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무대다. 연출과 무대 디자인을 담당한 제피렐리는 너비 46m, 높이 18m에 이르는 초대형 무대 위에 섬세한 미술, 화려한 의상으로 볼거리 넘치는 시대극을 펼쳐놨다. 그리고 무대를 채운 베이징의 군중은 130여명의 합창단과 연기자로 이뤄졌는데, 주인공 못지않은 존재감을 뽐낸다. ‘투란도트’ 속 군중은 투란도트 등 권력자에게 억압당해 맹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권력자의 잔인함에 편승해 칼라프 왕자와 류 등을 박해하기도 한다. 제피렐리는 쉴 새 없이 부유하듯 움직이는 무질서한 군중의 모습으로 이를 표현했다.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돔) 무대에 오른 오페라 ‘2024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서울 공연. 솔오페라단

제피렐리는 우리나라에선 올리비아 하세가 출연한 ‘로미오와 줄리엣’(1968)을 비롯해 ‘말괄량이 길들이기’ ‘챔프’ ‘무솔리니와 차 한 잔’ ‘제인 에어’ 등을 남긴 영화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본질은 무대 연출가였다. 특히 대학에서 미술과 건축을 전공한 그는 오페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출가로 유명했다. 정교하게 고증된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대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현대 오페라계에서 유행하는 레지테아터(작품의 분위기는 물론 결말까지 바꾸는 연출)와는 반대다. 이 때문에 2019년 그의 별세 소식은 오페라계에서 ‘전통적인 오페라 연출’의 종언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연출한 프로덕션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 등에 남아 있으며 많은 오페라 영화로도 만날 수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