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밀알복지재단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공동 주최한 제10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일상 속의 장애인’에서 입상한 작품입니다. 국민일보 ‘더 미션’은 입상 작품 전체를 매주 월요일마다 소개합니다.
일하기 싫었었어요
김보현
고용부문 대상(고용노동부 장관상)
#비장애인으로 살아온 30년
치열하게 공부하고, 일하며 살아온 30년이었습니다. 치과의사 그리고 전문의가 되기까지 치열하게 공부하고 일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인턴 및 레지던트로 근무할 때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래서 때로는 “일이 하기 싫었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 일이란 해야만 하는 의무, 그리고 의사로서 실력을 쌓기 위한 수단의 의미도 컸던 것 같습니다. 환자 분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잘 치료해드리면서 보람과 성취를 느낄 수 있었지만, 진료 외에 주어진 많은 업무들에 치였던 나날들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의사에서 환자가 되다.
저는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의사로서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친구들과 강원도 양양에 서핑을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같은 병원 응급실에 하루 뒤인 일요일에 환자로 돌아왔습니다. 하루아침에 의사에서 환자로 근무하던 병원에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현실 감각이 없어서 괜찮았지만, 저의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지옥 같은 날들이 연속되었습니다.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고, 우울증 약도 달고 살았습니다. 그 당시 저의 상실감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일이었습니다.
“내가 다시 치과의사로서 일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일터로 복귀하다. “일하고 싶어요!”
“여보세요?” “안녕하세요.”oo병원 교육수련팀 ooo입니다.”
제가 병원에 입원하여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레지던트 수련 과정 중에 장애를 갖게 되어 휴직을 하였는데 이 휴직이 1년 이상 지속되면 레지던트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수련 규정에 대해 안내해주는 전화였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일이라는 것에 대해 현실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제 상태는 1시간만 휠체어에 앉아있어도 기립성 저혈압으로 어지럽던 때였기 때문에 휠체어에 앉아서 치과 진료를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컸고, 다른 일을 찾아볼까하는 고민도 해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화를 받고 내가 복직해서 다시 일을 하지 않으면 이 직업을 갖기 위해 평생을 치열하게 공부하고 달려온 나의 인생이 송두리째 없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비장애인일 때 격무에 시달리며 때로는 하기 싫었던 그 일이 이제는 정말 지금까지의 제 삶 전체를 걸고 다시 하고 싶은 절실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7개월가량의 짧은 병원 생활을 뒤로 하고 레지던트로 일터에 복귀하였습니다.
“정말 격하게 다시 일하고 싶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다.
병원에 돌아와 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휠체어에 오래 앉아서 진료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하였고, 진료하는데 맞는 휠체어도 맞췄습니다. 본과 3학년 때 처음으로 임상 실습을 시작할 때 했던 스케일링부터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나 자신도 내가 다시 진료할 수 있을지 몰랐으니, 병원의 교수님 및 동료들은 더 걱정이 됐을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분들은 저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고, 신뢰를 주었습니다. 그러한 신뢰를 기반으로 저는 다시 치과의사로서 진료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비장애인 치과의사일 때와 동일하게 진료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니 더 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의무로만 느껴지던 일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제 자신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바로 설 수 있는 그런 사명이 되었습니다. 그 사명감으로 환자 분들을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저 자신도 즐겁게 그리고 절실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좋아”
#장애인에게 있어 직업의 의미
장애인에게 직업이란 돈을 버는 수단을 넘어 자아실현의 목적도 있습니다. 비장애인들에게도 직업은 동일한 의미를 갖겠지만, 제가 느낀 바로는 장애인이 되었을 때 더 강하게 이러한 의미를 느꼈습니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서는 장애인을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장기간에 걸쳐 직업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라고 정의합니다. 이러한 법적 정의에서도 볼 수 있듯 장애인은 상당한 제약을 받습니다. 특히 직업생활에 있어서 더 그렇습니다. 저 또한 그런 상황을 겪었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매일 우울했던 제가 다시 일을 하면서 활기찬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장애인이 되고나니 살아가는데 돈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호화롭게 살기 위해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생존”에 돈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제 친구가 유럽에 가서 화장실을 사용할 때 돈을 받는 것을 겪어보고는 불만을 토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저는 장애인이 되고 나니까 매일이 유럽입니다. 소변을 볼 때 매일 5-6개 사용하는 도뇨관을 사야했습니다. 아직 유럽을 못 가본 제가 매일 유럽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뿐 아니라, 다른 여러 보조 기기들이 필요했고 사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에게 직업이란 돈을 버는 수단을 넘어 자아실현의 목적도 있습니다.”
#장애인식개선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다.
“저 휠체어 탄 선생님 진료 잘 하시나요?”
레지던트로 복귀하여 열심히 진료하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제 귓가에 들려온 음성이었습니다. 치과에 가면 치과의사를 먼저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진료 의자에 누운 후 치위생사들이 진료 준비를 먼저 하고나서 치과의사를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얼굴에 소공포를 덮은 상태에서 치과의사가 진료를 이어가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는 진료를 다 받고 나가면서 휠체어 탄 저를 보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는 저는 한 번도 위와 같은 걱정스런 음성과 시선을 느끼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선후 관계가 바뀌었을 때는 휠체어를 탄 치과의사를 먼저 보고 걱정이 될 때가 있나봅니다. 저는 이렇게 선후 관계만 바뀌었을 뿐이었는데 달라지는 인식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부정적인 편견보다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장애와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하는가
저는 치과의사가 되기까지 그리고 치과의사가 된 이후 전문의가 되기까지 수많은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제가 기억을 못하는 것인가? 생각도 해보았지만, 들은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보다는 장애와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고 익숙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진료실에서 열심히 진료를 하면서 환자 및 보호자 분들의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을 할 수 있지만, 진료실 밖에서도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직장 내 및 사회적 장애인식개선교육 전문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전문 강사 양성 과정 교육 중에 제가 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들어보지 못하였는지에 대한 해답도 찾았습니다. 7차 교육 과정부터 장애인식개선 교육에 대한 내용들이 교과서에 반영되기 시작하였고 최근 들어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치과의사로서 직업 생활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장애인식개선 교육전문강사로서 진료실 밖에서도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어!”
#세상은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The world will not get better on its own).
영국의 역사학자 Eric Hobsbawm이 한 말입니다. 세상이 저절로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하고 손 놓고 있으면 절대로 세상은 저절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그리고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지능, 전기차 등 인류가 계속 발전하니까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저절로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인식을 바꾸는 일은 매우 힘듭니다. 따라서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러한 인식을 바꾸는 데 장애인의 직업생활에 대한 제약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고, 그 결과로 인식이 바뀌면 제약도 더 없어지는 선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 제약 없이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장애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일을 하고 활발히 활동하게 되면 장애와 장애인을 우리 주변에서 친숙하게 접할 수 있게 되고 인식도 개선이 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장애인이 실제로 자유롭게 일하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 기반 시설의 개선도 유도할 것입니다. 장애인 그리고 비장애인, 우리는 함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정말 행복하게 다시 일하고 있습니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