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어둠 속에서 민족교육의 희망을 품고 설립된 제천유치원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충북 제천시 제천제일교회(안정균 목사)는 12일 교회 예배당에서 부설 제천유치원(원장 지명희) 개원 10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제천유치원은 1924년 교회가 세운 유아교육 기관으로 100년 동안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지역사회를 섬겨왔다.
안정균 목사는 “1924년 당시 교회가 유아교육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당시 일본이 초중등 교육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교회는 유치원을 통해 민족의식을 심어주려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천제일감리교회(당시 제천읍교회)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동명유치원이라는 이름으로 제천유치원을 설립했다. 안 목사는 “3.1운동 이후 민족의 미래를 위해 교회들이 적극적으로 유치원 설립에 나섰다”며 “제천유치원은 그 정신을 이어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열어주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교회는 독립운동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돼 일제의 탄압을 받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유아교육을 통해 민족교육을 실천하려 했다. 192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35개에 불과했던 유치원이 1930년대에 들어서 180여개로 급증한 데는 당시 교회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제천유치원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1941년 제천 중앙시장에서 발생한 대화재로 교회와 유치원이 전소됐지만, 성도들의 도움으로 재건됐다. 6·25전쟁 당시에도 운영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으나 전쟁 후 다시 교육을 이어갔다. 안 목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회와 지역사회의 헌신 덕분에 교육의 불씨를 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늘날 제천유치원은 지역 사회에서 중요한 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안 목사는 “충북 안에도 100년이 넘은 유치원이 몇 있었으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은 제천유치원뿐”이라며 “이 유치원의 100년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닌 기독교와 민족교육이 함께 이룩한 역사”라고 강조했다.
제천유치원이 지금껏 배출한 졸업생만 5000명이 넘는다. 현재는 16명의 교직원이 126명의 원생을 교육하고 있다. 100주년 기념식에는 지역주민과 졸업생 등이 자리를 빛냈다. 윤건영 충북교육감, 박영기 제천시의회 의장, 엄태영 국회의원 등 지역을 대표하는 인사들도 참석했다. 제천유치원 24회 졸업생인 신하식 한양여대 명예교수는 “제천유치원이 100년 동안 이어온 교육적 성과는 단순히 유아교육에 그치지 않고 한국 교회가 민족교육에 이바지해온 대표적인 사례”라며 “유치원이 앞으로 100년을 넘어 종신의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