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교육의 새 수장을 뽑는 선거가 11일 막을 올린다. 본선거는 오는 16일로 닷새 남았지만 사전투표는 11~12일 이뤄진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해직교사 특혜 채용으로 대법원에서 직이 박탈된 조희연 전 교육감의 잔여 임기를 채울 인물을 뽑는 보궐선거다. 임기 1년8개월짜리 교육감이지만 교육계에 끼칠 파장은 간단치 않다.
후보 4인 공약은
보수와 진보 각 진영에서 구성된 단일화 기구에서 경쟁자를 물리치고 올라온 후보는 2명이다. 보수에선 조전혁 서울시 미래교육연구원 원장, 진보에선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각각 추대됐다.
양측은 여러 분야에서 상반되는 공약을 내걸었다. 학생의 학력을 높이고 사교육을 줄이는 방법부터 뚜렷하게 갈린다. 조 후보는 공교육을 살리려면 학교에서 시험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본다. 초등학교 지필평가 부활, 수행평가 축소 공약을 내걸었다. 방과후 선행학습도 허용해 사교육 수요를 줄일 계획이다. 그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교육청 산하 학교평가청을 신설해 학교의 교육력을 정확히 측정·평가해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정 후보는 초등학교 지필평가 부활을 ‘퇴행’으로 규정한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학력을 높여야 하고, 이를 돕기 위해 교육청과 대학이 협력하는 ‘학습진단치유센터’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정 후보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수행평가는 과정을 평가하기 때문에 지필고사보다 더 나은 방향”이라며 “일률적인 하나의 정답을 찾는 시험 하나로는 미래 사회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역사 교육에선 ‘극과 극’이다. 조 후보는 전임 조 교육감 재임 10년간 친북·종북 교육이 학교 현장에 침투했다고 본다. ‘동성애 코드’ 등이 여과 없이 교육 현장에 반영된다고 보고 바로 잡겠다는 입장이다. 정 후보는 현 집권 세력을 ‘뉴라이트’와 ‘친일’로 규정한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았던 경력을 강조하며 “친일교육 뿌리 뽑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두 후보 모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학생 맞춤형 교육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본다. 다만 조 후보는 내년 전면 도입보다는 시범사업을 통해 단점을 보완하는 ‘속도조절론’에 무게를 싣고 있다. 정 후보는 교육부 주도로 내년 3월 도입되는 AI교과서는 학생에게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높아 검증을 철저히 할 계획이다.
윤호상, 최보선 후보는 모두 단일화 기구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 출마했지만 윤 후보는 보수, 최 후보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다양한 공약을 내세워 유권자들의 선택을 호소하고 있다.
윤 후보는 유·초·중·고교 현장을 모두 경험한 전문가라는 강점을 살려 자녀 교육 부담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폐교 등을 활용해 권역별 유·초등 통합돌봄센터를 만들고, 늘봄교실을 중학교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영어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양질의 우수 영어 교육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도록 교육청이 지원한다는 내용도 있다.
최 후보는 ‘차별 없는 공정한 서울 교육 구현’을 목표로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교육계획을 수립하겠다고 약속했다. 교육 취약 계층을 위한 기금 1조원 조성 계획도 발표했다. 교육청에서 예산을 집행하고 남은 돈과 학교안전공제회 수익 사업을 늘려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AI 기반의 에듀테크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공약도 있다.
키워드는 ‘전교조’ ‘중간평가’ ‘미스매치’
당선자는 2026년 6월 30일까지 서울 교육을 이끌게 된다. 차기 선거 일정을 고려하면 실제 일하는 시간은 1년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교육감 선거 특성을 고려하면 향후 5년8개월 이상 서울 교육을 좌우하는 선거일 수 있다. 이번 선거가 임기 4년의 차기 교육감 선거 구도뿐 아니라 서울 교육의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교육감 선거는 ‘인지도’와 ‘단일화’가 강력한 변수로 작용해왔다. 이번에 승리하면 차기 선거에서 인지도와 단일화에서 우위에 서는 ‘현직 프리미엄’을 누리게 된다. 도전자들은 정당 지원 없이 얼굴을 알려야 한다. 현직은 인지도에서 앞서므로 단일화에서도 유리하다. 조 전 교육감이 유력 보수 후보들의 진흙탕 싸움 덕에 처음 당선된 뒤 내리 3선을 하는 과정을 보면 현직이 얼마나 유리한지 잘 드러난다는 평가도 있다.
현직 없는 이번 선거의 변수로는 크게 세 가지가 꼽힌다. 먼저 전교조에 대한 서울 유권자의 평가가 이뤄진다는 점이 있다. 조 후보는 보수 진영의 전교조 저격수였다. 국회의원 시절 전교조 교사 명단을 공개해 전교조와 전쟁을 치렀다. 대항마인 정 후보가 전교조 출신은 아니지만 전교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선거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선거가 전교조 해직교사 채용에서 비롯됐을 뿐 아니라 진보 진영에선 대법원 유죄 판결 이후에도 조 전 교육감을 옹호하는 분위기가 있다.
또 윤석열정부 교육 정책의 중간평가라는 시각이 있다. 조 전 교육감이 3선하는 과정에서 서울 유권자의 표심은 늘 보수 후보를 향해 있었다. 표가 갈려 패배했을 뿐이다. 교육감 선거에선 보수색이 더 짙었다는 뜻인데 단일화가 성사된 이번 선거에서 보수 진영이 패하면 현 정부 교육 정책에 대한 반감 표출이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시도지사와 교육감의 정치 진영이 서로 다른 ‘미스매치’ 해소 여부도 주목된다. 교육 난제 해결을 위해 일반 행정과 교육 행정의 협력이 중요해지는 상황이란 견해가 있다. 정부와 광역지자체장에 이어 교육감까지 보수 일색인 상황보다는 교육감이라도 견제 기능을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맞설 수 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