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KPGA투어 제네시스 포인트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 남자 골프의 ‘차세대 에이스’ 장유빈(22·신한금융그룹)이 오구플레이를 했다. 지난 6일 막을 내린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서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1라운드 13번 홀(파4)에서 2번 아이언으로 친 티샷이 왼쪽 벙커로 향했다. 아무 생각없이 벙커에서 두 번째 샷으로 볼을 그린에 올렸다. 그런데 그린에서 볼을 닦으려다 보니 자신의 공이 아니었다. 동반자들에게 그 사실을 즉시 알린 뒤 원구를 찾아 플레이를 이어갔다. 네 번째 만에 홀아웃했으나 그는 2벌타를 받아 더블보기 스코어를 기록했다.
라운드를 마친 뒤 장유빈은 “공을 확인한 순간 ‘아, 망했다. 왜 내 공이 아니지?’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면서 “그 순간은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이고 내 실수였기에 최대한 빨리 잊고 남은 홀을 잘 마무리하려고 했다. 지금은 홀가분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장유빈은 결국 1타 차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오구플레이로 인한 2벌타가 없었더라면 1타 차 우승이어서 아쉬움이 클 수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골프를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보고 순리대로 상황을 처리한 그의 당연한 행동에 찬사가 쏟아졌다.
장유빈의 오구플레이를 보면서 문득 어떤 오구플레이가 소환됐다. 2년 전 골프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윤이나(21·하이트진로)의 오구플레이다.
윤이나는 2022년 6월 16일 치러진 DB그룹 한국여자오픈 1라운드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볼로 플레이를 했다. 러프에 빠진 공을 친 뒤 그린에 올라가 퍼팅을 하려는 순간 자신의 공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도 그대로 플레이를 진행한 것.
그리고 이후 아무 일 없었던 양 대회 출전을 이어갔다. 급기야 오구플레이 이후 네 번째 대회인 에버콜라겐 퀸즈크라운에서 프로 데뷔 첫 우승까지 거뒀다. 그것도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이었다. 대회 기간과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도 윤이나의 행동과 표정은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윤이나는 당시 대회 1라운드 직후에 대한골프협회(KGA)에 이메일로 오구플레이를 자진신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 평소대로 다음 대회인 호반 서울신문 위민스 클래식에도 출전했다. 하지만 협회가 징계를 확정하면서 3라운드 도중 실격 처리됐다.
그리고 이후 KGA 스포츠공정위원회는 KGA가 주최, 주관하는 대회에 3년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어 KLPGA도 상벌위원회를 열어 3년 출장 금지라는 골프 선수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골프라는 스포츠의 근간을 뒤흔든 중대 사안으로 간주, 일벌백계로 다스렸다.
윤이나는 2022년 7월 25일 에이전트를 통한 사과문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요지는 이랬다. 그는 “불공정한 플레이로 출전 선수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 나은 선수, 그리고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누구나 실수는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을 즉각 인정하면 해프닝으로 끝나 외려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반면 그 사실을 끝까지 숨기면 그건 속임수고 범죄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똑같은 사안임에도 장유빈은 “좋은 공부 했다”고 웃어넘길 수 있었던 반면 윤이나는 “죄송하다”며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린 건 대처 방식이 정반대로 달랐기 때문이다.
해외 미니투어를 돌며 자숙과 반성의 시간을 보내던 윤이나는 애초 예정보다 1년 6개월 빠른 올 시즌부터 투어에 합류했다. KGA와 KLPGA가 선수의 장래성과 투어 흥행을 고려해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징계를 3년에서 1년 6개월로 낮춰서다.
그는 지난 4월 KLPGA투어 국내 개막전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을 통해 1년 9개월 만에 복귀 신고를 한다. 그는 복귀 기자회견에서 “조기에 복귀할 수 있게 도움을 준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겸손하고 모범적인 태도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올 시즌 21개 대회에 출전, 미스컷과 기권 각각 2차례를 제외하고 17개 대회에서 컷을 통과했다. 그중 한 차례 우승(제주 삼다수마스터스)을 포함해 12차례나 ‘톱10’에 입상했다.
시즌 3승으로 다승 공동 선두에 오른 4명의 선수를 제치고 당당히 상금 순위 1위, 대상 포인트 2위, 평균타수 1위다. 이런 맹활약에 힘입어 KLPGA투어 대회에 참가했던 여자 골프선수들의 순위를 매기는 랭킹 시스템에서도 1위 자리를 꿰찼다.
이번 주 발표된 롤렉스 여자골프 세계랭킹도 32위로 KLPGA투어 선수 중에서는 가장 높다. 올 들어 가장 핫한 선수임은 틀림없다. 그런 그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진출을 위해 퀄리파잉 시리즈(QS) 참가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이나는 세계랭킹 75위까지 주는 QS 최종 예선에 직행한다. 거기서 상위 20위 이내에 들면 내년 LPGA투어 카드를 손에 넣게 된다.
장유빈도 PGA투어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대상격인 제네시스 포인트 1위로 시즌을 마치게 되면 PGA투어 관문인 콘페리투어 파이널에 곧장 진출한다. PGA투어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일 없을 정도의 장타를 자랑하는 장유빈의 미국 진출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응원과 격려가 쇄도한다.
그러나 윤이나의 경우는 다르다. 찬반 여론이 팽팽하다. 찬성하는 쪽은 새로운 목표 실현을 위해 도전을 응원해줘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반대쪽은 징계 경감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로 지금은 적기가 아니라는 견해다. 스스로 주홍글씨를 매달지 않았더라면 결코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기에 왠지 씁쓸하다.
매끄럽지 않은 ‘이별’도 윤이나의 행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 중 하나다. 그는 징계 경감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매니지먼트사, 그리고 구설수에도 변함없이 후원을 유지한 메인 스폰서와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매니지먼트사의 경우 오래전부터 미국 진출을 도와주는 S사와 비밀리에 접촉하면서 도움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S사와 조만간 계약한다는 설이 파다하다. 후원사도 해외 유명 카지노 업체와 계약 초읽기에 들어갔다며 구체적 계약 금액까지 돌고 있다.
팀에 소속된 선수는 계약기간 동안 다른 팀과 접촉할 수 없다는 이른바 ‘템퍼링 규정’이 골프계에 적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양새는 썩 좋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현재 후원사가 징계 기간으로 인해 내년 6월까지로 연장됐던 계약 기간을 선수를 위해 올해 말까지로 6개월 단축해 주었던 터라 씁쓸함은 더하다.
누군가는 이 상황을 또 다른 의미의 ‘오구플레이’라고 일갈한다. 윤이나가 자신의 그릇된 행동이 세상에 알려진 뒤 보여준 행동과 눈물, 그리고 쏟아냈던 반성과 후회의 발언들을 리마인드해 보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윤이나는 아직 어리다. 어른들의 조력이 필요한 나이다. 틀림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코칭이 다소 조급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속도 조절이 필요할 때다.
“평생 사죄하며 성적보다는 한국 골프 발전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겠다.” 윤이나가 지난 4월 1년 9개 월만의 투어 복귀전에서 했던 말이다. 그것은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골프계와 그를 사랑하는 팬들과의 약속이다. 윤이나가 부디 그 약속을 실천하길 바란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