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겨울을 지나고 있는 석유화학 업계가 최근 잇달아 발표된 중국의 경기 부양책에 희망을 걸고 있다. 전 세계 석유화학 시장의 공급과잉으로 한국 업체들이 구조적인 어려움에 직면한 가운데 세계 최대 소비국인 중국의 수요가 살아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이유에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 석유화학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이구환신(3월), 지급준비율 인하(9월), 부동산 부양책, 대규모 재정 투입 등이 효과를 내는 시점부터 세계 석유화학 시장 공급과잉이 정상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석유화학 수요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전 세계 석유화학 기업들은 중국 경기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석유화학 기업들의 중국 수출 비중은 36.3%에 달했다.
최근 중국의 석유화학 제품 자급률이 높아져 한국 기업의 대중 수출이 감소한 상황도 중국 경기가 회복되면 함께 나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자체 석유화학 수요 충당 목적으로 관련 설비를 늘렸는데, 자국 경기가 나빠지면서 남는 물량을 저가 수출한 측면이 있다”며 “경기회복으로 중국 내 생산 물량의 자체 소화가 가능해지면 곤두박질쳤던 글로벌 석화제품 가격도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가 지난 1일 중국 국경절 연휴 돌입 전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자 10월 첫째 주 주요 석유화학 제품 가격은 오름세를 보였다. 그동안 계속 추락했던 벤젠, 파라자일렌, 테레프탄산 등 가격이 반등했다. 탄화규소 기반 폴리염화비닐의 중국 내수 가격도 10.5% 급등했다.
특히 이구환신 정책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2010년 중국 내 자동차, 가전, 가구 등의 교체 수요를 일으키며 석유화학 제품 수요를 견인한 바 있다. 이구환신이란 낡은 것을 신제품으로 바꾼다는 의미로 주요 소비재를 새로 사는 사람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삼성증권은 이구환신 정책으로 자동차 수요가 늘면 외장재에 들어가는 폴리프로필렌(효성화학), 폴리카보네이트·고부가합성수지(롯데케미칼, LG화학)와 내장재에 들어가는 폴리우레탄(동성케미컬), 폴리아마이드(BGF에코프로머티리얼즈) 등을 생산하는 국내 업체들이 수혜를 볼 것으로 내다봤다. 양적완화 정책과 부동산 부양책이 침체된 건설 경기를 되살리면, 이는 건물에 들어가는 내·외장재 관련 석유화학 제품 수요를 늘려 호재로 작용한다.
더 장기적으로는 동유럽, 중동에서 벌어지는 ‘2개의 전쟁’ 종료 이후 발생할 재건 수요와 인도 동남아시아 등 비중국 신흥 시장의 가파른 성장을 기대한다. 다른 석화 대기업 관계자는 “종전 이후 재건 수요가 가시화하고 신흥국이 과거 중국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이 오면 수요가 급증하면서 구조적 공급과잉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면서도 “그 시점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고, 한국 기업들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니 불안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