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학교에 와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도무지 수업 시간에 집중을 못 합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요.” 할머니는 눈앞이 깜깜했다. 어떻게 손녀를 가르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손녀를 앉혀놓고 야단부터 쳤다. 화를 참지 못하고 어린 손녀를 때리기까지 했다.
할머니가 손녀의 부모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은 2018년부터였다. 아들과 며느리는 손녀가 두 살 되던 해에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 남부 지역으로 떠났다. 그때부터 아이 양육은 온전히 할머니의 몫이 되었다. 그는 처음 손녀의 양육을 도맡게 됐던 때를 회상하면서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할머니에게 큰 도움을 준 곳이 바로 베트남 월드비전이었다. 할머니는 이 단체가 아동 인권 개선을 위해 벌이는 프로젝트 ‘해피 패밀리 모델’에 참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월드비전 덕분에 아이를 무조건 혼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잘못을 저질렀을 땐 그 이유부터 차분하게 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항상 아이의 정서부터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그리고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고 손녀와의 관계도 회복됐다고 말이다.
베트남 아이들에게 ‘행복한 가정’을 선물하다
할머니의 이름은 호안 히 끼엡(65)씨였다. 지난 8일(현지시간) 끼엡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곳은 베트남 하이퐁의 메이 차이 지역에 있던 작은 강당. 이곳에서는 해피 패밀리 모델 회원 20여명이 모인 가운데 이 프로젝트의 취지와 성과를 소개하는 행사가 1시간 가까이 진행됐는데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이는 이 지역에서 해당 프로젝트를 이끄는 콩 티 수씨였다. 수씨는 커다란 나무가 그려진 화이트보드에 해피 패밀리 모델의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종이를 하나씩 붙여가면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저희 지역에는 443개 가정이 있습니다. 월드비전이 후원하는 아동은 30명입니다. 저희 목표는 간단합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특히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아동 학대입니다. 어린이들을 각종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메이 차이 지역은 하이퐁에 있는 베트남 월드비전 응오꾸엔 사업장이 담당하는 곳이었다. 응오꾸엔 사업장은 2021년부터 이 프로젝트를 시작해 그동안 84회나 ‘해피 패밀리 워크숍’을 열었고 1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해피 패밀리 데이 포럼’도 3번이나 개최했다. 취약 계층이 겪는 고충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가정들을 방문하는 일도 많았다. 이들 행사를 통해 부모들은 아이와 건강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배웠고 아이들은 수영 강습이나 성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40대 여성은 해피 패밀리 모델을 통해 달라진 자신의 삶을 자세하게 들려줬다. 그는 운전기사로 밥벌이를 하던 남편이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일자리를 잃으면서 생활고를 겪었다고 했다. 딸의 교육 문제도 큰 걱정거리였다. 하지만 해피 패밀리 모델 관계자와 상담한 뒤 딸은 미용 기술을 배울 기회를 갖게 됐고 가족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딸이 지금은 미용실을 개업해 매달 300~400달러를 벌고 있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베트남에서 확인한 한국 후원자들의 마음
베트남 방문은 경기도 일산광림교회(박동찬 목사)와 월드비전, 국민일보가 함께하는 ‘밀알의 기적’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2010년 시작된 밀알의 기적 캠페인은 국민일보 취재진이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월드비전 해외 사업장을 방문해 현지 상황을 점검한 뒤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박동찬 목사와 국민일보 취재진, 월드비전 관계자들은 지난 8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도착하자마자 베트남 월드비전 관계자들을 만나 베트남 월드비전의 역사와 진행 중인 각종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청취했다.
1989년 설립된 베트남 월드비전은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인 탓에 자국민을 상대로 후원을 독려하거나 모금 활동을 진행할 수 없는 곳이다. 필요한 재정은 다른 나라나 기업들의 도움에 기대고 있는데 한국 월드비전은 베트남 월드비전의 든든한 뒷배가 돼주는 단체다. 베트남 월드비전을 지원하는 세계 13개국 월드비전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후원 규모가 큰 곳이 한국 월드비전이다. 베트남 월드비전이 운영 중인 25개 사업장 가운데 한국 월드비전이 지원하는 지역도 6곳에 달한다.
베트남 월드비전이 품은 수십 만명의 아이들
베트남 월드비전은 가난이나 질병 등으로 고통받는 취약 계층 아동 23만9437명(이하 지난해 기준)을 지원하고 있는데 간접적인 도움을 주는 인원까지 합하면 그 규모는 무려 300만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18만2029명은 누군가의 도움이나 후원이 절실한 절대 취약 계층 아동(Most Vulnerable Children·이하 MVC)이다. 베트남 월드비전은 이들 어린이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지역도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곳이 앞서 소개한 메이 차이 지역이 있는 하이퐁의 응오꾸엔 사업장이다. 응오꾸엔 사업장은 2010년부터 이 지역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이 사업장에 등록된 아동은 2190명이나 되고 MVC로 분류되는 어린이는 약 500명에 달한다. 해피 패밀리 모델처럼 어린이 인권 문제를 환기시키는 프로젝트 외에도 경제적으로 열악한 가정을 상대로 저축을 장려하거나 생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응오꾸엔 사업장 관계자는 “80명 넘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애 아동을 돌보거나 아이들의 영양 문제를 개선하기 프로그램 등도 운영 중”이라며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이퐁·하노이(베트남)=글·사진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