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선교 허가’ 140주년에 돌아보는 그들의 만남

입력 2024-10-08 16:23 수정 2024-10-08 22:57
소요한 교수, 서영석 교수, 유은식 목사, 장성배 교수 (왼쪽부터)가 8일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에서 열린 '고종 황제 선교 윤허 140주년 기념 학술제'에 참석했다.

조선 보빙사절단(보빙사)과 가우처 목사의 만남이 우연이 아닌 계획 아래에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감독회장 이철)가 8일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전창희 목사)에서 열린 ‘고종 황제 선교 윤허 140주년 기념 학술제’서다.

이날 소요한 감신대 교수는 ‘가우처와 보빙사절단’을 주제로 발표했다. 소 교수는 “가우처는 보빙사 만남 이전부터 조선 선교에 대한 구상과 계획을 갖고 있었다”며 “가우처 목사가 계획해 이들과의 만남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빙사와 가우처의 만남이 우연적인 사건이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지만 이들의 미국 방문은 미국 일반인에게까지 경로가 노출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었다”고 했다. 당시 미 언론사인 뉴욕타임스 뉴욕헤럴드 보스턴포스트를 비롯한 지역 언론사는 보빙사의 방문과 이들의 경로를 상세히 보도했기 때문이다.

기차 안에서 시작된 가우처 목사와 보빙사의 인연은 갑신정변 이후까지 이어진다. 소 교수는 “홍영식이 미국 방문 후 고종황제에게 전달한 복명기에는 교육의 중요성이 담겨 있었다”며 “이는 교육 선교를 강조했던 가우처 목사의 선교 방향성과 일치하며 고종 황제의 선교 윤허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1884년 급진개화파의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간 김옥균에게 손을 내민 것 역시 가우처 목사였다. 소 교수는 “김옥균은 일본 망명 가운데 서양인 선교사를 만나 한국어 성서 번역 과정에 참여했다”며 “보빙사 구성원 갈등은 역설적으로 개신교 수용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가우처 목사가 보빙사를 만나기 전부터 한국 땅의 선교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던 이유는 그의 친구인 매클레이 선교사 덕이었다. ‘매클레이의 동아시아 선교 및 한국선교의 공헌’을 제목으로 발표한 서영석 협성대 교수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선교에 앞장섰던 그는 한국으로 넘어와 한국선교의 개척자가 됐다”고 밝혔다. 매클레이 역시 보빙사와의 인연을 갖고 있다. 서 교수는 “매클레이는 김옥균·윤치호의 도움을 받아 고종에게 병원 학교 설립 의향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며 “매클레이가 한국에 머물렀던 시간은 2주에 불과했지만 이를 계기로 기독교 박해 없이 조선 내에서 선교가 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철 감독회장이 8일 서울 종교교회서 열린 '고종 황제 선교윤허 140주년 기념 학술제'에서 설교하고 있다.

이날 학술제 이전에 진행한 예배에 참석한 이철 감독회장은 “하나님은 조선·한국을 사랑하셔서 새로운 질서의 문을 열게 하셨다”며 “조선은 새 도전을 맞게 됐으나 그 어려움이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 국민 이 나라가 역사를 통해 성숙해져 갈등과 아픔을 계기로 세계 많은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글·사진=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