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책을 내고 누군가의 앞에 설 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고 모든 일은 주님이 하십니다.”
네팔 최상위 계층인 브라만 출신 외국인 노동자에서 네팔 감리교 감독이 된 수먼 고우덤(52) 목사의 말이다. 네팔의 소도시 모라항 출신인 고우덤 목사는 경기도 용인 의왕 안산 등지의 공장에서 일하다 한 이주민 사역자의 전도로 힌두교도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했다.
타지에서의 고된 삶에 지쳐 자살을 시도했고 고향에서조차 개종을 이유로 배척당했지만 그는 “생명을 넘치게 하는 하나님”(요 10:10)을 신뢰하며 묵묵히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고우덤 목사의 인생 역정과 네팔 사역이 담긴 책 ‘수먼 고우덤’(신앙과지성사) 출간 축하 예배 참석차 내한한 그를 지난 7일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감신대)에서 만났다. 이날 행사에는 감신대와 같은 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고우덤 목사의 은사와 신대원 동기, 후원교회 성도와 목회자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1991년 스무 살의 나이로 한국 땅을 밟은 그는 급여 연체를 일삼는 일부 악덕 업체 탓에 일자리를 옮기던 중 기독교를 접했다. 3억3000명의 신을 둔 힌두교의 땅인 네팔의 복음화를 위해 한 신학대에 등록해 주경야독하던 고우덤 목사는 비자 문제로 98년 모든 걸 중단한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가족과 친지의 반대에도 한국인 선교사를 도와 고향에서 영성원을 짓던 그는 영성원 건축을 후원한 세신감리교회의 인연으로 2003년 감신대 장학생이 돼 한국에 돌아왔다.
이후 외국인 노동자 시절부터 교제하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약속하고 신학 공부도 원 없이 하는 꿈같은 시간이 이어졌지만 어려움도 적잖았다. 이전 학교와 신학 학풍도 달라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벅찼다. 고우덤 목사는 “처음엔 띠동갑 차이나는 동기와 교제하는 것조차 너무 어색하고 힘들었다”며 “이덕주 감신대 은퇴교수가 손잡아 준 덕에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이 교수는 캄보디아 몽골 베트남 일본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온 유학생 10여명이 속한 ‘겨자씨’란 기도 모임을 지도하며 이들의 학교생활을 도왔다.
“여러 가르침을 배워야 온전히 성장할 수 있다”는 은사의 조언에 힘입은 그는 감신대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거쳐 미국 웨슬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날 행사에서 축사를 전한 이 교수는 고우덤 목사를 “예수를 닮고자 애썼던 제자”로 기억했다. “예수 닮겠다는 열정 하나로 모진 역경을 이겨낸 제자의 모습을 보니 감동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여러 교회의 도움이 있었다. 한국교회가 20년간 고우덤 목사란 겨자씨를 심고 나무로 키운 셈”이라며 “이제는 그가 네팔에서 겨자씨를 뿌리는 시간이다. 400여 교회와 200여명의 신학생을 잘 돌보도록 한국교회가 기도와 지원을 멈추지 말자”고 제안했다.
2011년 네팔에 세계선교교회를 개척한 이후 지교회 9곳을 세운 고우덤 목사는 2019년 네팔 감리교 감독으로 선출됐다. 네팔 감리교신학교 총장이기도 한 그는 현재 신학 교육과 재난 구호 및 목회자 자녀 장학금 지원 등에 힘쓰고 있다. 한국을 “또 하나의 고향이자 새 인생을 시작하게 해준 나라”라고 일컫는 고우덤 목사는 “각종 직함보다 ‘예수의 좋은 제자’로 기억되고 싶다”며 “내 욕심은 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드러내고자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