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복음화 위한 20년 외길…주님과 한국교회 은혜로 가능했죠”

입력 2024-10-08 15:40 수정 2024-10-08 18:51
수먼 고우덤 목사 부부가 지난 7일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에서 열린 자서전 ‘수먼 고우덤’ 출간 축하 예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저는 책을 내고 누군가의 앞에 설 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고 모든 일은 주님이 하십니다.”

네팔 최상위 계층인 브라만 출신 외국인 노동자에서 네팔 감리교 감독이 된 수먼 고우덤(52) 목사의 말이다. 네팔의 소도시 모라항 출신인 고우덤 목사는 경기도 용인 의왕 안산 등지의 공장에서 일하다 한 이주민 사역자의 전도로 힌두교도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했다.

타지에서의 고된 삶에 지쳐 자살을 시도했고 고향에서조차 개종을 이유로 배척당했지만 그는 “생명을 넘치게 하는 하나님”(요 10:10)을 신뢰하며 묵묵히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고우덤 목사의 인생 역정과 네팔 사역이 담긴 책 ‘수먼 고우덤’(신앙과지성사) 출간 축하 예배 참석차 내한한 그를 지난 7일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감신대)에서 만났다. 이날 행사에는 감신대와 같은 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고우덤 목사의 은사와 신대원 동기, 후원교회 성도와 목회자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1991년 스무 살의 나이로 한국 땅을 밟은 그는 급여 연체를 일삼는 일부 악덕 업체 탓에 일자리를 옮기던 중 기독교를 접했다. 3억3000명의 신을 둔 힌두교의 땅인 네팔의 복음화를 위해 한 신학대에 등록해 주경야독하던 고우덤 목사는 비자 문제로 98년 모든 걸 중단한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가족과 친지의 반대에도 한국인 선교사를 도와 고향에서 영성원을 짓던 그는 영성원 건축을 후원한 세신감리교회의 인연으로 2003년 감신대 장학생이 돼 한국에 돌아왔다.

이덕주 감신대 은퇴교수가 지난 7일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에서 열린 자서전 ‘수먼 고우덤’ 출간 축하 예배에서 축사하고 있다. 이 교수 곁에 선 이들은 고우덤 목사 부부.

이후 외국인 노동자 시절부터 교제하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약속하고 신학 공부도 원 없이 하는 꿈같은 시간이 이어졌지만 어려움도 적잖았다. 이전 학교와 신학 학풍도 달라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벅찼다. 고우덤 목사는 “처음엔 띠동갑 차이나는 동기와 교제하는 것조차 너무 어색하고 힘들었다”며 “이덕주 감신대 은퇴교수가 손잡아 준 덕에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이 교수는 캄보디아 몽골 베트남 일본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온 유학생 10여명이 속한 ‘겨자씨’란 기도 모임을 지도하며 이들의 학교생활을 도왔다.

“여러 가르침을 배워야 온전히 성장할 수 있다”는 은사의 조언에 힘입은 그는 감신대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거쳐 미국 웨슬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날 행사에서 축사를 전한 이 교수는 고우덤 목사를 “예수를 닮고자 애썼던 제자”로 기억했다. “예수 닮겠다는 열정 하나로 모진 역경을 이겨낸 제자의 모습을 보니 감동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여러 교회의 도움이 있었다. 한국교회가 20년간 고우덤 목사란 겨자씨를 심고 나무로 키운 셈”이라며 “이제는 그가 네팔에서 겨자씨를 뿌리는 시간이다. 400여 교회와 200여명의 신학생을 잘 돌보도록 한국교회가 기도와 지원을 멈추지 말자”고 제안했다.

‘수먼 고우덤’ 출간 축하 예배가 열린 지난 7일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11년 네팔에 세계선교교회를 개척한 이후 지교회 9곳을 세운 고우덤 목사는 2019년 네팔 감리교 감독으로 선출됐다. 네팔 감리교신학교 총장이기도 한 그는 현재 신학 교육과 재난 구호 및 목회자 자녀 장학금 지원 등에 힘쓰고 있다. 한국을 “또 하나의 고향이자 새 인생을 시작하게 해준 나라”라고 일컫는 고우덤 목사는 “각종 직함보다 ‘예수의 좋은 제자’로 기억되고 싶다”며 “내 욕심은 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드러내고자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