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인 바이블] ⑥예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특징과 선교 방향

입력 2024-10-09 09:00 수정 2024-10-09 09:00

에큐메니컬 진영의 구원 이해는 영적 구원과 물질 구원,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 인간의 구원과 모든 피조물의 구원을 다 포함하는 포괄적인 구원 이해의 경향을 지님을 살펴보았다. 에큐메니컬 진영이 말하는 구원은 인간과 모든 피조물의 온전한 행복과 거의 유사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인간에게 주신 구원이 과연 이런 것일까.

첫째,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해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고 말씀하신다. 구원 얻은 자가 걷는 길은 물질적으로 잘 살고 행복한 길일 수 있지만 오히려 때로는 구원받은 자로 살기에 손해 고난 핍박이 있는 좁은 문 좁은 길을 가야 할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구원을 종합적인 행복으로 기술한 에큐메니컬 구원 이해는 예수의 가르침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둘째, 병 고침이나 가난한 자들을 먹이심이 예수께서 주신 구원 영생의 본질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먹이셨고 귀신을 쫓으시고, 많은 병자를 고치시며 영적인 문제와 함께 육신 차원의 문제도 해결해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병 고침과 떡 문제 해결 등을 기대하며 예수를 자기 동네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는 사람들을 향해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해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눅 4:43~44)”고 말씀하신다. 만약 예수께서 주시고자 하는 구원이 영적인 문제와 육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이었으면 예수는 당연히 동네 사람들의 청을 받아 육적인 문제도 모두 해결해주셨어야 한다.

셋째, 예수께서는 또한 사회 구조적인 차원의 변혁을 요구하는 백성들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셨다. 요한복음 6장에 의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가 예수를 왕으로 삼고자 했다. 성경은 “예수께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백성들의 요구는 에큐메니컬 진영이 말하는 ‘사회구원’과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이 점을 생각해보면 예수께서 추구하신 구원은 에큐메니컬 진영이 말하는 사회구원이기보다는 개인 구원을 통한 사회의 변화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 같은 점을 볼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구원 개념은 에큐메니컬 진영의 총체적인 구원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에큐메니컬 진영은 예수께서 수행하셨던 개인의 영혼 구원 중심의 개념을 지나치게 넓히면서 복음 운동을 경제 인권 복지 환경 혁명 운동 등으로 확장한다. 이런 점을 보면서 한국 조직신학계의 거장 중이 하나인 이종성 교수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사업과 관심이 확대돼 현재는 복음 전도의 사업은 약화하고 오히려 정치적 사회적 프로그램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물론 에큐메니컬 진영처럼 구원의 폭을 무한대로 확장하면 세계친화적이고 세계참여적 이미지를 주는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구원은 인간의 고안이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철저히 그리스도의 말씀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은 인간이 만드는 행복이고 선교는 단지 복지 운동 등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리=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