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장애인] 20년 동안 조현병이라는 악기를 연주 중입니다

입력 2024-10-07 15:53 수정 2024-10-07 15:54

*이 글은 밀알복지재단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공동 주최한 제10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일상 속의 장애인’에서 입상한 작품입니다. 국민일보 ‘더 미션’은 입상 작품 전체를 매주 월요일마다 소개합니다.

20년 동안 조현병이라는 악기를 연주 중입니다
이관형

일상부문 대상(보건복지부 장관상)

조현병은 “현악기의 현을 조율하여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현병 환자들의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약물로 잘 조율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기에 지어진 이름이다. 악기든 사람의 인생이든 건강하게 조율되려면 누군가에게 들려줘야 한다. 그래야 틀린 소리를 내는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조현병 환자다. 20년 동안 조현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병을 고백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당당하게 병을 밝히고 있다. 용기를 내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를 소중히 대해 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폭력과 학교 폭력에 시달렸다. 명문대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서 성공하는 길이 복수라고 생각했다. 고3때는 머리를 삭발하고 잠도 자지 않았다.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었지만 이를 참고 공부했다. 친구는 물론 사람과 대화도 하지 않으며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면증과 우울증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결국 대형 병원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사람과 말을 하지 않다보니, 대인관계도 사회생활도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필요해서 기독교 동아리에 가입했다. 동아리는 독특한 훈련과 프로그램으로 유명했다. 매주 성경을 공부하고 토요일마다 동아리 사람들 앞에서 느낀 점을 발표해야 했다. 사실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고해성사와 비슷했다. 처음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하고 말이다.

나에게도 발표의 시간이 찾아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써 내려간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의 아픔과 상처, 그로 인해 겪고 있는 병의 증상과 고통까지 두렵고 떨리는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곤 자리로 돌아오는데, 한 선배가 미소를 지으며 “관형아! 잘했어. 너무 멋있었어!”라고 말해주었다. 날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불쌍하게 생각할 줄 알았는데, 이외의 반응이었다. 나중에 선배들의 발표를 듣고서야 깨달았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지만, 그것을 나누다보면 회복이 되고, 누군가에게 웃으면서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학교 수업시간에도 같은 경험을 했다. 나는 언론학을 전공해서, ‘스피치 발표 실습’이라는 수업을 들어야 했다. 교수님은 첫 시간부터 학생들에게 앞에 나와 자기소개를 5분간 하라고 시켰다. 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첫 발표를 망치고 말았다. 같이 수업을 듣는 동기들이 위로해 줄 정도였다. 그 다음 주 수업에는 교수님이 10분간 자기소개를 하라고 시켰다. 이번에도 고개를 푹 숙이고 떨리는 마음에 눈을 감았다. 다만, 동아리 때 발표를 했던 경험을 살려 내 인생의 아픔과 상처, 조현병을 가진 사실까지도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발표를 마치자 적막이 흘렀다. 조심스레 눈을 떠서 교실에 앉아있는 교수님과 학생들을 쳐다봤다. 모두가 말없이 날 바라봤다. 그리고 앞에 앉은 한 학생이 박수를 쳤다. 이내 교실 안에 있는 교수님과 모든 학생들이 날 향해 박수를 쳐 주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방법은 말하는 기술이나 발음, 목소리가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이라는 사실을. 그때부터 매주 스피치 실습 시간이 기다려졌다. 말하는 것에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비록 정신과 약의 영향으로 침이 잘 안 나와 발음은 어눌했지만,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 계속되는 직장생활 실패로 나이만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장애인식개선 강사 양성과정을 알게 되어 지원했다. 처음엔 내가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직업이 적성에 맞을지 고민됐다. 게다가 조현병 당사자로서 사람들에게 장애인식개선 강의를 하는 게 과연 설득력이 있을지도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대학 후배의 말 한마디가 큰 도움이 되었다.

“형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 자체가 콘텐츠에요.”

이 말에 용기를 얻어 장애인식개선 강사 양성과정에 도전했다. 서류와 면접에 붙고 양성 과정에 임했다. 그 안에서도 정신장애 유형의 당사자는 나 하나였다. 신체장애 유형의 다른 강사 후보생들은 처음엔 나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함께 강의 듣고 밥을 먹고 삶을 나누다 보니, 조현병 환자도 다르지 않다는 걸 전할 수 있었다. 어느덧 양성 과정을 마친 뒤, 영상 테스트를 받았다. 그때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껏 내뱉었다.

“조현병 환자들은 폭력과 폭언으로 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고, 그 트라우마가 병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가 괴물인지? 우리에게 아픈 상처를 준 나쁜 사람들이 괴물인지? 아니면 아프게 살아가는 우리를 괴물로 보이게 만들고 차별하는 언론과 사회가 진짜 괴물인지?”

이어서 나는 동아리에서 했던 발표처럼, 대학교 스피치 수업 때 했던 발표처럼, 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우리는 직접 겪어보지는 알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왔습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생명조차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살아 숨 쉬는 건, 그 고통을 잘 이겨내 왔다는 증거입니다. 결코, 의지나 정신력이 약해서 병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강인하고 슬기롭게 이 병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게 조현병은 장벽이 아니라, 장벽을 넘게 해주는 발판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나는 영상 테스트에 합격하고 장애인식개선 강사로서 출발할 수 있었다. 물론 조현병 당사자로서 강의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번은 강의를 시작도 전에 어떤 여성분이 내 눈을 피하며 다가왔다. 나는 “왜 제 눈을 피하세요?”라고 물어보자, 그 여성은 “조현병 환자와 눈을 마주치면 공격을 당할 수 있다고 들어서요.”라고 대답했다. 그만큼 이 사회는 정신장애인들을 향한 차별과 편견이 굉장히 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려 노력하고 있다. 다른 신체장애 유형처럼, 정신장애 유형의 당사자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뉴스 속 일부 범죄자들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선하게 살아가는 정신장애인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또 사회에서 부당한 현실과 차별에 목소리를 내는 용감한 당사자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우리에게도 이루고 싶은 인생의 목표가 있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릴 것이다.

나는 지금도 여러 강연 무대 뿐 아니라, 글을 쓰고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내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겪었던 인생의 아픔과 상처, 정신질환으로 인한 고통과 회복의 과정까지. 대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조현병과 함께 살아온 나의 인생을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고 있다.

대학시절, 한 은사님이 내게 해주신 조언이 있다.

“세상에 나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듣고도, 나를 이해해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3명이상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 할 수 있단다.”

당시 내게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 세어 봤었는데, 10명이나 되었다. 동아리 선후배들, 학교 친구들, 교수님들에 이르기까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통해 조현병에서 회복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강연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나는 이 순간도 삶의 연주를 통해 더욱 건강하게 조율될 것이며, 앞으로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