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된 영화 ‘조커: 폴리 아 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짓눌려 괴물이 되기를 선택한 연쇄살인마 아서 플렉의 암울한 현실과 비현실적 공상을 주된 소재로 삼는다. 큰 호평을 받았던 전작과 달리 이번 속편은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다. 관객들은 주인공 아서가 전작보다 더 통쾌하게 사회 기득권층을 지탄하고 테러로 세상을 뒤엎는 서사를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개봉된 영화는 자신이 이전에 표출했던 광기를 끝내 감당하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마는 소시민 아서를 보여주는 식으로 결말을 맺는다. 기대가 컸던 만큼 관객들의 실망감 또한 컸다. 거의 대다수 평론가와 관객이 작품에 낮은 평점을 주고 있다.
영화 ‘조커: 폴리 아 되’에 대한 불만족스러운 반응은 근자에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불평등 구조에 대한 패배의식과 분노를 반영하고 있다. 일반대중은 스크린 속에서라도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균열을 일으키는 안티히어로의 활약을 보고 싶어한다. 권력과 자본이 특정 계층에게 과도하게 집중돼 있고 날이 갈수록 일반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사회적 편익과 효용이 줄어드는 것을 체감하는 요즘이다. 기득권층에 속하지 않은 시민 대다수는 혁명적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진보진영의 비전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 정치지형도가 불안하게나마 좌우 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북한 공산정권의 존재와 군사적 위협, 그리고 사실상 기존의 기득권층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이는 여러 진보진영 지도부 인사들의 위선적 행태 때문이다.
그러면 근래 기독교계의 정치지형도는 어떠한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인이라 하면 대개는 보수 정치진영에 호의적일 것이라 여겨지곤 한다. 이런 인식은 어느 정도 사실과 부합한다. 한국교회는 해방 직후 분단과 민족상잔 시기에 북한 공산정권의 잔혹한 억압, 박해, 학살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암울한 시절 철저한 반공정신으로 나라를 이끈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게 깊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 기독교인들은 민중신학이나 진보적 자유주의 신학을 지지하는 소수의 인원들을 제외하면 거의 대다수가 초지일관 보수정권 집권에 힘을 실어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수 친화적이었던 한국 기독교계의 정치성향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모양새다. 1998년 이래 세 차례의 진보정권 집권기를 지나오면서 한국 기독교인들의 보수 정치진영에 대한 지지도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하락 중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동안 한국 기독교인들이 보수진영에 열렬한 지지를 표명했던 데는 신앙의 자유에 대한 교계의 염원이 가장 큰 동인(動因)으로 작용했다. 한국교회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의 신사참배 강요 때문에 극심한 환란을 겪었다. 약 2,000여명의 성도들이 구속되고 200여개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50여명의 지도자들이 고문과 옥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로도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많은 수의 성도들과 교역자들이 고문과 학살에 희생되었다. 이런 아픔의 역사는 한국교회 내부에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치환되는 신앙의 자유에 대한 염원을 심어 놓았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전반적으로 민족자주라는 명분을 앞세워 친북, 반외세(특히 반미) 노선을 고수해 왔으므로 역사를 기억하는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지지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인식됐다.
그런데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극심한 박해를 당했던 기억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점점 희석되고 있다. 특히 그 고난의 시대를 몸소 겪었던 노년의 교역자들과 성도들이 거의 다 소천하면서 보수와 진보 정치세력에 대한 한국교회의 평가기준도 큰 변화를 겪는 중이다. 이제 교회가 어떤 정치세력을 평가하는 데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은 신앙의 자유가 아니라 재화와 권력 분배의 공정성이다.
원래 기독교회는 경제관(觀) 측면에서 보수와 진보 양측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로마 시대의 초대교회는 원시공산주의적 경제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신실한 성도들은 재산 전부를 교회에 헌금했다. 이들 가운데는 당시로서 거부(巨富)라고 불리울만한 인사들도 상당수 포함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회 지도부는 이 헌금을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최소 생계를 유지하고 전도 사역에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하는 데 사용했다. 이는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의식이 확고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볼 때 감히 따라할 엄두조차 내기 힘든 완벽한 원시공산주의적 실천원리였다. 그래서인지 인류 역사에 드물지 않게 존재했던 여러 전근대 공산주의 공동체들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설립된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마르크스주의를 추종하던 집단들조차 기독교의 평등사상과 자원 분배 원칙을 자주 참고하기도 했다.
반면 기독교회는 전통적으로 신앙을 위한 헌신의 열심을 각 개인 간 경쟁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았고 그에 상응하는 내세의 보상 역시 차등적으로 수여된다고 굳게 믿었다. 대부업이나 이자의 수령 등 자본주의적 금융체계의 기초 원리들 또한 대체로 수용하는 편이었다. 이처럼 기독교 공동체 내부에 구축된 독특한 자본주의적 경쟁-보상 체계는 교회가 그 공산주의적 공동체성에도 불구하고 근대 자본주의 시대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게 해준 요인이었다.
이처럼 교회가 경제체제와 관련해서 보수와 진보 양측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므로 교회 내부에서 진보진영에 대한 지지율이 늘어나는 것을 비정상적인 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만일 한국의 주요 진보 정치집단이 종교에 대해 우호적이지는 않더라도 신앙의 자유만큼은 철저히 보장한다고 하면 향후 교회 내에 진보진영을 지지하는 이들은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이는 그동안 보수 정치집단들이 힘써 옹호했던 한국사회의 성장지향형 자본주의 체제가 더이상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복지제도를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인 단계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근래 한국사회에서 진보 정치세력이 득세하고 그들의 문화적 메시지가 일반대중의 큰 호응을 얻게 된 것은 그만큼 기존의 자본주의 경제성장 패러다임이 그 타당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는 보수와 진보진영 모두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한 경제성장의 필요성을 수긍하는 입장이었다. 사회 전체의 부의 크기가 늘어나야 양 진영 모두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구구조 급변으로 한국경제의 성장이 과거처럼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 전체가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다. 효용 증대는 멈추어버린 채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기득권층만 안온한 삶을 살아가는 한국의 늙어버린 자본주의, 그 무력한 진면모가 모두에게 명백하게 드러나는 요즘 자유경쟁시장 원리를 앞세우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회의감은 날로 커져만 가는 중이다.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 콘텐츠 역시 이런 분위기를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과거에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라 하더라도 경제성장 자체를 부정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결실의 분배 방식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그러나 2019년의 ‘기생충’, ‘조커’, 그리고 2021년의 ‘오징어 게임’은 애초 경쟁을 통해 성장을 도모하는 일 자체를 악의 근원으로 지목하는 다소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메시지를 전파했고 이러한 메시지에 대중은 열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교회가 언제까지나 보수 정치집단에 대한 찬동과 지지의 정서를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교회라고 해서 시대의 거대한 변화를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교회 내에서 진보 정치진영에 대한 호응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실태를 단순히 신앙의 퇴락 증거라고 매도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의 삶의 정황의 변화, 특히 자라나는 세대가 겪는 정황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고 어떻게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온전한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보수 정치진영에 대한 맹목적 지지행태는 사라지는 대신 보수와 진보 양측 정치집단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힘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의 한국교회 입장에서는 보수와 진보 정치집단 사이의 정치이념 차이보다 어느 편이 더 사회적 공의와 경제정의 실천에 진정성을 보이는지가 더 중요한 판단요인이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