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 연루 의원들과 관련해 “상당수 비공천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비주류의 한계 때문에 주류 인사들이 많이 연관된 비자금 스캔들과 무관하게 공천을 진행하기로 했던 방침을 뒤집은 셈이다. 이시바 총리가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내 기반보단 여론을 선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모리야마 히로시 간사장·고이즈미 신지로 선거대책위원장 등은 6일 회의를 열고 비자금 스캔들과 관련된 의원들에 대한 공천 방안을 결정했다.
우선 자민당은 지난 4월 스캔들 연루 의혹이 있는 의원들에게 내린 8단계 처분 중 4번째인 비공인보다 무거운 처분을 받은 자는 공천하지 않을 계획이다. 또한 이보다 가변운 처분을 받은 의원 중에서 정치윤리심사회에서 제대로 소명을 하지 않는 등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은 의원들도 공천하지 않는다.
자민당은 비례대표 의원 명단에서도 비자금 스캔들 연루 의원들은 제외하기로 했다. 일본은 석패율제가 있어 소선거구에서 낙선했더라도 비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당선자와 득표율 차가 크지 않은 낙선자들 일부가 구제를 받을 수 있다. 비자금 스캔들 연루 의혹에겐 이같은 패자부활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이시바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비자금 문제로 인해 중징계를 받았거나 충분히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사람 등에 대해 상당한 비공인(공천)이 발생할 것”이라며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는 관점에서 공천권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최종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자민당 아베파, 니카이파 등 일부 파벌이 정치자금 모금 행사인 ‘파티’를 주최하면서 파티권을 할당량 이상 판 소속 의원들에게 초과분 돈을 다시 넘겨주는 방식 등으로 오랫동안 비자금을 조성해 온 것이 드러났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논란이 커지자 자민당은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들에게 징계를 내리고 관련 법 개정에 나섰다. 대부분의 징계자는 과거 최대 파벌이었던 아베파에서 나왔다. 이 때문에 비주류로 당내 기반이 약한 이시바 총리가 당내 다수 파벌인 아베파를 고려해 비자금 연루 의원들을 원칙적으로 공천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시바 총리는 정권 출범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50% 안팎의 저조한 상황에 머무르자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스캔들 연루 의혹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말 바꾸기 논란도 이어졌다. 자민당의 한 의원은 “이미 처분을 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더라도 국민은 납득하지 못한다”며 “국민을 이해시키느냐 당내를 배려하느냐의 갈림길”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결정으로 아베파의 적지 않은 중진들이 공천을 받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사히신문은 “총리를 비롯한 당 집행부는 비자금 스캔들은 공천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며 “하지만 여론의 반발에 당 집행부가 5~6일 양일간 대응을 논의한 뒤 일부 절차를 변경했다”고 전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