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계가 국제 정세 변화에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전쟁 위기로 불안한 중동 정세로 국제 유가가 요동치면서 국내 정유사, 석유화학 등 관련 기업들의 수익성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동시에 중국의 대규모 부양책 발표로 수요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시시각각 한국 산업계에 충격을 주는 외부 요인이 잇따라 나타나면서 기업들의 불확실성도 커질 전망이다.
7일 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 대비 3.61달러(5.15%) 오른 배럴당 73.7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다음날인 지난 4일에도 WTI는 상승세를 이어가면 전날보다 0.67달러 오른 74.38달러를 기록했다. WTI는 지난 한 주 동안 10%가량 치솟으며 국제 유가의 변동성이 커졌음을 보여줬다. 같은 기간 12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0.43달러(0.55%) 오른 배럴당 78.05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는 지난 3일 기준 전날 대비 3.72달러(5.03%) 오른 배럴당 77.62달러를 기록하며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인바 있다.
국제 유가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로 인해 중동전쟁 위기감이 커지면서 변동성이 커졌다. 공급난이 발생하면서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부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는 ‘오일쇼크’가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는다. 이란은 현재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3%를 매일 생산(약 330만 배럴)하고 있다. 이스라엘로부터 이란의 석유 생산시설이 타격을 받으면 국제 유가 변동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국내 주요 정유사들의 표정은 어둡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단기적으로는 정제마진이 상승해 국내 정유사 실적엔 긍정적일 수는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타격이 더 크다. 글로벌 수요 위축이 발생해 수익성 악화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으로 제품 가격을 올리면 수출 경쟁력도 약해져 실적에 악영향을 미친다. 국내 정유사들은 올해 3분기 국제 유가 하락과 정제마진 하락이 동시에 겹치면서 실적 부진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 급격한 국제 유가 상승은 수요 불확실성을 키워 기업들의 시장 대응력을 떨어뜨린다.
산업계 전반의 활력을 끌어올릴 외부 변수도 있다. 중국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다. 중국은 침체한 내수를 살리기 위해 ‘돈풀기 정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지난달 말 중앙은행의 1조위안(약 190조원) 규모 시중 유동성 공급과 정책금리 인하 등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연이어 발표했다. 일회성 현금 지급 계획과 함께 고용 촉진을 위한 종합 일자리 대책도 내놨다.
인구 대국인 중국에서 수요 회복세가 나타나면 글로벌 경기에도 선순환이 나타난다. 국내 석유화학·건설기계 등 중국을 최대 수출국으로 둔 국내 기업들이 중국의 경기 부양책을 기점으로 회복세에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하는 이유다. 지난해 기준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중국 수출 비중은 36.3%이다. 건설기계 업계 역시 중국 정부가 부동산 대출 금리를 인하하는 등 부동산 경기 살리기에 들어가면서 수출 호황 기대를 높이는 중이다. 정유사 입장에서도 중국의 수요 회복은 글로벌 수요 회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적 개선의 청신호다.
산업계에서는 국제 정세 변화가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길 기다리는 것보다 근본적인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기적인 대외 변수에 실적이 휘청이는 취약한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특정 국가의 경기 상황이나 국제 지표 변화에 기업 실적이 휘청이는 것은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지점”이라며 “위기 상황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