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 안무가, 연출가, 영상감독인 필립 드쿠플레는 상상력 넘치는 복합예술의 선두주자다. 드쿠플레는 춤, 연극, 서커스, 마임, 비디오, 영화, 그래픽, 건축, 패션 등을 뒤섞은 화려한 비주얼과 멀티미디어 효과로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작품을 내놓는다. 이런 그의 작업 스타일에 대해 ‘드쿠플러리’(Decoufleries: 드쿠플레 방식의)란 단어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다.
어릴 때부터 예술가를 꿈꿨던 드쿠플레는 정규교육을 거부했다. 대신 마르셀 마르소 마임학교를 거쳐 국립 서커스학교에 입학한 그는 다양한 신체 훈련을 배웠다. 그리고 우연히 바뇰레 무용제를 보고 춤에 매료돼 18세에 국립현대무용센터(National Center for Contemporary Dance, 국립현대무용학교)에 입학해 정식으로 춤을 배웠다. 이후 미국 유학을 다녀온 그는 1983년 ‘흐린 카페’로 바뇰레 안무대회에서 우승한 후 DCA 컴퍼니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안무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드쿠플레는 “매일매일의 일상으로부터의 시적 탈출을 꿈꾸며 스릴 넘치는 낯선 세계를 보여주는 것”을 창작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런 철학을 토대로 한 드쿠플레의 작품은 초창기엔 대중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평단으로부터 “너무 가볍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예술감독을 맡은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이 세계적인 찬사를 받으면서 예술성과 독창성을 인정받게 됐다. ‘무용계의 이단아’인 그는 무용만이 아니라 영화와 광고 등 영상 분야에서도 각종 상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았다. 무용과 신체를 중심에 두고 새로운 분야로 끊임없이 진출하는 그는 태양의 서커스, 카바레 쇼, 인터랙티브 전시 등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드쿠플레가 오는 25~27일 LG아트센터 서울의 시그니처홀에서 ‘샤잠!’을 선보인다. ‘샤잠!’은 1998년 칸 영화제 50주년을 기념해 창작된 작품으로 영화 촬영 기법에 대한 오마주가 담겨 있다. 영상, 프로젝터 등 첨단 테크놀로지를 사용해 기존의 시공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다양한 움직임과 감각을 만들어낸다. 초연 이후 전 세계 주요 극장에서 200회 넘게 공연할 정도로 히트한 이 작품은 1999년 내한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드쿠플레가 2021년 리뉴얼한 버전으로 초연 당시 참여했던 무용수와 연주자들을 다시 불러모았다. ‘순간의 예술’인 무용을 세월이 지난 뒤에도 기억하고 보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드쿠플레의 고민이 담겨 있다. 관객들은 20여 년 전 무대 위 스크린에서 촬영된 오리지널 ‘샤잠!’의 영상과 중년이 된 무용수의 실제 움직임을 동시에 감상하며 묘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샤잠!’은 공연장 로비에서 무용수들과 밴드의 퍼레이드를 따라 드쿠플레가 만든 낯선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무용수들의 고난도 움직임과 거울, 액자, 영상 등을 활용한 시각효과들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관객들은 실재와 가상의 이미지가 혼합된 놀라운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드쿠플레는 공연의 오프닝에 직접 무대 위에 오를 예정이며, 한국인 무용수 예호승이 통역이자 게스트 무용수로 함께 출연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