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음악·여행·유행 다 나와…‘인스타 매거진’ 보는 Z세대

입력 2024-10-04 11:30 수정 2024-10-04 11:30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유되는 포엠매거진이 제작·판매하는 후드티를 입은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포엠매거진(@poemmag) 운영자 제공

대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개개인의 취향과 관심사를 토대로 글과 사진을 공유하는 ‘인스타 매거진’이 뜨고 있다. 뉴스와 같은 시사 정보는 물론 음악, 영화, 패션, 뷰티, 여행 등 다양한 장르를 웹매거진 형태로 다루는 이들 계정은 한때 유행했던 블로그 시대를 너머 새로운 대안 매체로 자리를 잡은 모습이다.

인스타 매거진은 인스타를 통해 이용자가 마음에 드는 계정을 쉽게 찾아 팔로우하고 남들과 실시간으로 게시물을 공유할 수 있어 젊은 층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매거진 소비뿐 아니라 직접 매거진을 만들어 운영하는 데도 장벽이 높지 않다.

시·음악·소설까지… ‘개취 저격’하는 매거진
프리랜서 배동훈(27)씨는 올해 2월부터 시를 추천하는 포엠매거진(@poemmag)을 운영하고 있다. 배씨는 “학창 시절에 생각하던 시는 어려울 수 있는데 매거진을 통해 소개하니 많은 분들이 시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며 “제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더 많은 사람이 시를 읽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독자들이 자신의 매거진을 통해 시를 읽게 됐거나 좋아하게 됐다는 반응을 접할 때 ‘동력’을 얻는다고 했다.

인스타매거진 '어제오늘내일'에 업로드된 음악 앨범 관련 게시물들. 어제오늘내일매거진(@ystrdy.tdy.tmrrw) 캡쳐

어제오늘내일매거진(@ystrdy.tdy.tmrrw)이라는 뮤직 매거진을 운영하는 A씨는 좋아하는 음악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 아티스트의 이야기나 앨범 설명을 담은 인터뷰 형식의 글도 연재한다.

매거진 플랫폼으로 인스타그램을 선택한 건 가장 대중적이고 접근성이 좋은 매체이기 때문이었다. 이 매거진은 3일 현재 팔로워가 9만7000명대에 달한다. A씨는 “저는 결국 음악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매거진을 계속 운영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생맥매거진(@saengmag) 운영자 B씨는 동아리 친구 4명과 함께 ‘취중잡답’ 콘셉트로 매거진을 시작했다. 친구들끼리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듯 다양한 취향과 주제에 대해 에세이 형식의 글을 연재한다.

인터뷰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발행하는 아워익스프레스(@ourexpresso)도 있다. 이 계정은 에디터들의 생각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내는 글을 함께 공유하며 9만9000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대형 매거진으로 성장했다.

운영자 배요한(23)씨는 세상을 느끼고 배우기에 ‘대학’이라는 커뮤니티는 너무 작다고 판단해 자신의 가능성을 더 많이 발휘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개인으로서의 인격적 성장을 목표로 시작한 매체였기에 즐겁게 하고 싶다”며 “규모의 틀에 갇혀 형식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스타 매거진이 활성화하면서 소설을 연재하는 계정도 등장했다. 에브리웨어매거진(@everywhere.mag)을 운영하는 입시강사 김명구(활동명·29)씨는 연애, 로맨스를 주제로 소설을 올린다. 김씨는 가장 대중적인 SNS 매체로 독자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매거진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인스타그램 특유의 즉각적 반응은 창작 활동에 자극을 주는 또다른 재미 요소다. 김씨는 “대부분의 창작물은 유통 과정을 거쳐 대중에게 전달되지만 인스타그램에서는 창작물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이라며 대중의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이 창작물을 만드는 동력이라고 전했다.

‘텍스트 힙’과 맞물린 매거진 유행
인스타 매거진의 흥행에는 글을 읽는 게 멋있게 보이는 ‘텍스트 힙’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있다. 텍스트 힙은 ‘텍스트’와 멋있다는 뜻의 ‘힙하다’를 합친 말이다. 독서가 하나의 멋진 유행이 됐다는 얘기다.

인스타매거진 '포엠매거진'에 올라온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읽는 이유'를 기록한 글. ((@poemmag)) 캡쳐

포엠매거진 운영자 배씨는 “젊은 세대가 활자를 안 읽다 보니 오히려 활자를 읽는 게 멋있어 보이고 남들과 다름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켜도 의미 없는 릴스나 사진을 보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활자를 읽고, 그러한 자신을 과시하려는 것도 있을 수 있다다”고 덧붙였다.

각자의 취향이 세분화된 것도 인스타 매거진의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매거진이 부흥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에브리웨어매거진 운영자 김씨는 “예전엔 유행을 선도하는 누군가(무언가)가 있었다면 현재는 본인의 취향이 자신만의 개성이고, 그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보가 너무 많은 시대에 누군가 관련 내용을 정리해주는 것을 원하는 수요도 있다. 김씨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걸 찾는 게 힘들어졌다”며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매거진을 구독하는 형태가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김동현(23)씨는 자신만의 글이나 취향을 자유롭게 전달하고 싶은 표현 욕구가 강해 인스타 매거진을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지난 5월부터 글을 좋아하는 친구 6명을 모아 주향매거진(@joohyangmag)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설레기도 하지만 단순히 ‘좋아요’나 댓글 수에 기분이 좋기보다 우리 스스로에 대해 표현 욕구를 가지고 만든 것들을 누군가가 본다는 점 자체의 재미가 크다”고 말했다.

잡지 위기가 인스타 매거진에 기회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인쇄 매체인 잡지 시장의 위축이 인스타 매거진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이미지 등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정보를 전달하는 잡지의 장점을 인스타 매거진이 효과적으로 흡수했다는 설명이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관람객. 뉴시스

실시간으로 변하는 트렌드를 담기 어려운 인쇄 매체의 한계를 보완하고 나아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김 평론가는 “인스타그램은 잡지라는 형태의 매체가 가진 분명한 장점을 반영하면서 인쇄 매체보다 훨씬 공유가 쉽고 공감을 일으킬 요소도 많다”고 말했다.

다만 인스타 매거진이 한순간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포엠매거진 운영자 배씨는 인스타 매거진에 수명이 있다고 보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팝업스토어나 독서 모임과 같은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김 평론가는 인스타 매거진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독자적 콘텐츠뿐만 아니라 코어 팬덤과 안정적 수익 확보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자의 취향을 굉장히 세밀하게 반영하고 투자 대비 수익을 확보해 가성비를 높여야 (인스타 매거진이) 지속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상희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