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숙 작가의 교인 풍경-8] 상처받은 마음은 알아줄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입력 2024-10-06 00:05
게티이미지뱅크

목회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냐는 질문에 85세이신 K 사모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라고 했습니다. 억울하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거나 하여 분하고 답답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K 사모님은 사모가 된 이후 줄곧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늘 교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마뜩잖았는데,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교인들을 섬겨도 오해받고 심지어는 아무 이유 없이 죄인이 될 때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딱 하나만 들려달라고 했더니 어느 집사님이 찾아와서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했대요. 그런데 그 이야기가 교인들에게 소문이 났다는 겁니다. 그 집사님은 사모님을 찾아와 퍼부어댄 것도 모자라 교회가 흔들흔들할 정도로 사모님 욕을 하고는 교회를 떠나버렸다고 해요.

이 와중에 목사님은 ‘사모는 잘해도 욕먹고 못 해도 욕먹는 자리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자신의 신세가 더욱 처량하게 느껴졌고 서러움까지 더해졌다고 하죠. 그 이후로는 상처받은 마음을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했고 한 번씩 그 억울한 감정이 올라오려는 기미만 보여도 가차 없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 누르고 또 눌러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K 사모님은 우리나라 속담은 조상들의 지혜가 깃들어있어서 그런지 다 맞는데 딱 한 가지 맞지 않는 속담이 있다고 하셨어요. 뭐냐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입니다. 자신의 경험에 의하면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더랍니다.

그러다 사모님을 고통스럽게 했던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뭐냐면 세월이 흘러 그 일이 있은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때의 억울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사실입니다.

억누른 감정은 자신을 알아줄 때까지 몸부림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K 사모님은 6개월 전 건강검진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았고 그래서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혹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나님 앞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하나씩 정리하던 중에 난데없이 그 일이 떠올랐는데 그때의 억울함이 되살아나서 몸부림치며 엉엉 울었다고 해요. 죽을 수도 있는 큰 수술을 앞둔 상태인데도 억울한 마음에 ‘화’가 진정되지도 용서가 되지도 않는 걸 보면서 사모님 자신도 몹시 놀랐다고 했습니다.

당황한 K 사모님은 친구 사모님을 만나 그동안 마음속 깊이 억눌러두었던 걸 하나씩 꺼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80 중반이 되어 그것도 암 수술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그 억울한 감정을 풀어낸 겁니다.

K 사모님 말고도 많은 사모님이 마음속에 억눌러둔 감정으로 인해 힘들어하죠. 화병은 억울한 마음을 삭이지 못해서 생긴 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참아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모님들에게는 화병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이런 억울함의 감정이 올라오는 건 믿음이 부족하거나 신앙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들을 더는 외면하려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알아차려서 풀어내는 겁니다.

왜냐하면 어떤 감정을 억눌렀다는 건 그 당시에 느낀 감정을 곧바로 알아주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감정이 가진 특성상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알아주지 않으면 알아줄 때까지 자신을 알아달라고 몸부림을 칩니다.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잠을 푹 잘 수도 없습니다. 때로는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서 주님 품에 고요히 머무르는 기도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걸 우리는 분심이라고 하는데, 분심이 들면 성경을 읽어도 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합니다.

이처럼 억누른 감정은 그걸 알아차려서 표현할 때 비로소 사라집니다. 혹 그 옛날 억눌러버린 아주 오래된 감정일지라도 그 감정을 불러일으킨 당사자에게 혹 그게 여의치 않으면 다른 누군가에게라도 자신의 응어리진 감정을 말로 표현해서 공감을 받으면 그러니까 그 감정을 알아차려서 이해해주면 점점 옅어지고 사그라집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운동이나 찬양을 한다든지 아니면 베개나 곰 인형을 억누른 감정의 대상이라 생각하고 두들겨 패며 소리를 지르는 것도 감정 에너지를 빼내 주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억누른 감정을 풀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해서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는 것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방금 언급한 식으로 억눌렀던 감정 에너지를 빼내 주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온전히 풀리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억누른 감정이 몸의 질병으로 반응을 보이는 건 막을 수 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면 현재의 관계에 문제를 일으킨다

K 사모님이 그러셨어요. 자신에게 찾아온 대장암으로 인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찬찬히 복기해보니 목회하면서 경험한 부정적 감정들을 풀어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억눌러둔 것 때문에 암이 온 거 같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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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맞을 수도 있어요. 암(癌)이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입구 자가 세 개가 있는데, 이것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다는 거고, 그 밑에 뫼 산 자가 있죠. 이건 앞에 산 같은 것이 가로막혀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고, 왼쪽에 누울 ‘역’ 자는 드러누워 버렸다. 즉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너무 억눌러서 결국 암에 걸리게 되었다는 것으로, 감정을 억누르면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억누른 감정을 풀어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아무리 오래전 일일지라도 억누른 감정을 풀어주지 않으면, 그 과거의 일이 우리의 현재 인간관계에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살아가면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렀다는 것은 그것이 현재의 인간관계 속에서 언제든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다는 말이고 그러다 보면 서로 별 것 아닌 일로 부딪치고 갈등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에서 하는 자신의 행동을 대부분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라 믿겠지만, 프로이트가 ‘의식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을 한 것처럼 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동 대부분은 ‘빙산’에 해당하는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행동은 나도 모르게 억누른 감정과 관련될 수밖에 없는데,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억누른 감정은 자신을 알아줄 때까지 자신을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유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과장되게 반응을 보이거나 화를 낼 상황이 아닌데도 화를 낸다든지 하는 식으로 왜곡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K 사모님이 그러셨어요. 그동안 아주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너무 예민하게 반응을 보인 것 같다고요. 하다못해 아들이 하는 말에서조차 서운함이 느껴지면 눈물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것만이 아니죠. K 사모님을 힘들게 한 그 집사님이 목소리가 크고 몸집도 좋았는데, 사모님은 왠지 목소리가 크고 걸걸한 사람을 만나면 싫었다고 합니다. K 사모님은 평소 목소리가 크고 몸집이 큰 사람이 이유 없이 싫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 겁니다.

상담은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

흔히 상담을 가리켜 ‘무의식의 의식화’라고 합니다. 이 말은 상담이란 자신의 무의식 즉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무의식이 의식화되면, 즉 내 행동을 살펴서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이해하고 또 알아차리게 되면, 그것들이 더는 현재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K 사모님은 목소리가 크고 몸집이 좋은 사람이 왜 싫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런 사람을 만나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겠죠. 목소리가 큰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어서 싫은 게 아니라 과거에 경험한 마음의 상처가 목소리가 큰 사람을 싫어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K 사모님은 80 중반이지만 퍼즐이 맞춰지듯 이제라도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되어 기쁘다고 했습니다.

살아오면서 내가 억누른 감정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혹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별일 아닌 일에 너무 예민하게 혹은 과장된 반응을 보인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는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그런 나의 말과 행동을 찬찬히 떠올려본다면 그것들은 나의 억누른 감정을 찾는 실마리나 단서가 되어줄 것입니다.


글=강현숙 작가, 치매돌봄 전문가, ‘오십의 마음 사전’(유노책주) ‘치매지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생명의말씀사) 저자

편집=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