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인 지난 7월 15일 경북 봉화의 한 경로당에서 발생한 ‘살충제 음독 사건'과 관련한 경찰 수사결과가 30일 나왔다. 사건 발생 77일만이다.
경북경찰청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가 사망하는 바람에 공소권이 없어 불송치 결정할 예정이라고 이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7월 30일 오전 7시쯤 안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던 A씨(85)가 숨졌다. A씨는 사건 발생 나흘 째인 7월 18일 안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왔다.
A씨 외에 피해 주민 B씨(78), C씨(65), D씨(75) 등은 다행히 건강을 회복해 사건 발생 열흘만에 각각 퇴원했다.
또다른 주민 E씨(69)는 여전히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이며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조사 결과, B씨 등 4명은 사건 발생 당일 봉화읍의 한 경로당에서 음료수병에 담긴 커피를 나눠 마셨다. 이들이 마신 커피를 담은 음료수병과 종이컵에서는 B씨 등 4명의 위세척액에서 검출된 에토펜프록스와 터부포스 등 2종의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사망한 A씨의 위세척액에서는 B씨 등 4명에게서 검출된 2종의 성분 외 포레이트, 풀룩사메타마이드, 아족시스트로빈 등의 성분이 추가로 검출됐다.
A씨에게서 검출된 에토펜프록스와 터부포스 성분은 B씨 등이 마신 경로당 음료수병에서 검출된 성분과는 상이한 동이원소비를 구성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제품이라도 원료의 공급처나 합성 및 제조공정에 따라 동이원소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경찰 등은 A씨가 같은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다른 살충제를 사용했거나 일부를 섞어서 음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경로당 주변 CCTV 분석 등을 통해 A씨가 사건 발생 사흘 전인 7월 13일 낮 12시 20분부터 약 6분간 경로당에 홀로 출입한 것을 확인했다. 또 A씨가 경로당에서 나와 주변에서 접촉한 물건을 확인한 결과, 에토토펜록스 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A씨가 7월 12일 오후 2시쯤 경로당 거실에서 커피포트에 물을 붓는 장면 등이 다른 경로당 회원에게 목격됐으며 해당 커피포트와 싱크대서도 동일한 성분의 살충제가 검출됐다. 수사과정에서 A씨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경찰은 A씨의 자택에서 농약 등을 수거했으며, 에토펜프록스와 터부포스 성분 등도 확인했다.
경찰은 경로당 회원 등을 상대로 실시한 면담·조사 등을 통해 A씨와 나머지 회원들 간 갈등이나 불화가 있었던 것을 확인했고 경로당 회원들이 화투를 자주 쳤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 57명으로 구성된 수사전담팀을 편성하고 현장 주변 CCTV·블랙박스 94개소 분석을 비롯해 약독물·DNA 등 감정물 59분석, 경로당 회원 등 관련자 129명 면담·조사, 피의자 범죄심리분석 등을 진행했다.
경찰은 A씨의 사망으로 인해 갈등 관계의 진위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없어 범행 동기를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A씨가 사망함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할 방침이다.
또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을 위해 범죄피해자지센터 연계, 치료비·심리상담 지원,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는 등 이들의 피해 회복을 도울 예정이다.
경찰은 특히 이번 사건과 같이 농촌지역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농약 사건 등의 재발을 막기 위해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 등에 노인복지법령과 조례를 개정해 경로당·마을회관 내·외부에 CCTV를 설치하는 법적 근거 마련을 요청하는 등 제도개선에도 나서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