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욱주 교수의 기독교 문화비평] ⑤ 딥페이크 기술 진화의 종착점, 섹스봇(sexbot)의 페이스 오프

입력 2024-09-30 09:00

최근 딥페이크 범죄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언론을 통해 텔레그램 메신저를 이용한 딥페이크 불법합성영상 유포사례가 공론화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원본 영상에 덧입히는 이 심층학습 기술은 2017년을 기점으로 일반대중에 의해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기술이 처음 대중화된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영상 합성이 가능해졌으며 앞으로도 인공지능 영상생성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에 비례해서 그 성능이 더욱 개선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딥페이크로 생성하는 영상이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는 만큼 이 기술이 범죄에 활용되는 빈도 또한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범죄사례는 합성 영상을 이용한 가짜뉴스 유포와 사기 그리고 딥페이크 포르노 제작이다. 근자에 우리 사회에서 딥페이크 범죄가 주요 화두로 떠오르게 된 것도 바로 이 딥페이크 포르노 제작 사례들 때문이다. 여성 학우나 직장 동료의 얼굴을 포르노 영상에 덧입힌 다음 해당 영상을 메신저를 통해 유포하고 돌려보는 비윤리적 행태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각되고 있다. 이는 명예 훼손, 사생활 침해,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등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로서 강력한 처벌 대상이 된다.

오픈AI의 SORA 같은 고품질 영상생성 인공지능 서비스가 아직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불법행위에 대한 우려감 때문이다. 이런 염려를 반영하듯,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딥페이크를 활용한 불법합성 성착취물을 소지하거나 시청할 경우 최대 징역 3년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미국과 영국 등 포르노 영상의 제작과 유통이 합법화된 국가들에서도 딥페이크를 이용한 불법합성 영상에 대한 처벌은 엄중하다.

딥페이크 범죄의 확산은 우리에게 두 가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첫째는 포르노 산업에 대한 관리 혹은 제재의 어려움, 둘째는 인공지능 기술 발전이 초래하는 공동체의식 붕괴 조짐이다. 우선 포르노 산업 측면으로 본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성행위나 성 착취 영상의 제작, 유통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합법화된 포르노 영상의 반입 및 유통까지 모두 위법행위로 지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개개인이 이런 영상을 시청할 길이 엄격하게 차단된 것은 아니다. 국내 유통이 법으로 금지돼 있기는 해도 많은 성인남녀 혹은 청소년들이 우회 경로를 통해 포르노 영상을 손쉽게 시청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해외에서 합법화된 포르노 영상의 유통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포르노 위법화 반대파는 1920년대 미국의 금주법 실패사례를 예로 들며 성매매 불법화 문제까지 같이 끌어들여 관련 법 조항의 폐지를 촉구한다.

그런데 행동주의 심리학의 관점으로 볼 때 이런 법적 제재가 결코 무의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이 ‘넛지(Nudge)’라는 저서에 기술한 것처럼 특정 행위의 허가 혹은 제재에 대한 기준 규정, 즉 디폴트 옵션은 은연중에 우리들의 선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포르노 산업의 위법화는 음란물에 대한 최소한의 심리적 저항선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이 저항선이 완전히 무너진 환경에서는 딥페이크 포르노처럼 더욱 악질적인 방식으로 비틀린 성충동을 표출하는 행위 또한 별다른 죄책감을 유발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딥페이크 포르노의 합성 이전 원본이 대부분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포르노 영상들인 만큼 포르노 제작과 유통에 대한 법적 제재는 딥페이크 포르노에 대한 거부감을 키우는 데에도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포르노 산업의 위법화 여부에 관한 결정은 자유와 권리의 원리보다는 적절한 규제와 책임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다음으로 딥페이크 범죄 사태가 시사하는바 AI 기술 발전에 의한 공동체 의식의 붕괴 조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직전 회차 기고문에서 밝혔듯 인공지능 기술은 애초 인간을 대체할 하인 혹은 동반자의 창조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발전 중이다. 여기에는 인공지능 로봇 성노예나 가상 배우자의 개발 또한 중요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섹스봇의 문제는 대중의 여론이나 시민단체의 구호 속에서만 아니라 사회학이나 철학 연구자들의 세계에서도 점차 중요한 논제로 대두되고 있다. 관련 연구서나 학술논문이 지속해서 발표되고 있고 학술대회 개최 빈도도 점차 늘어나는 중이다. 공신력 있는 저명 해외 학술대회 가운데는 “Love and Sex with Robots”(LSR)라는 대회도 존재한다. 이 대회를 창설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공지능 과학자 데이비드 레비는 2050년이 되면 인간과 로봇의 성관계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성사될 정도로 기술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되든 관련 기술의 개발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성적 욕망과 관련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계기는 모두 궁극적으로 이 섹스봇의 개발로 수렴된다. 딥페이크 역시 그 과정에 있는 기술이다. 지금은 포르노 영상에 다른 여성의 얼굴을 덧씌우는 정도지만 나중에는 성관계 대상이 되는 로봇의 얼굴을 원하는 여성의 얼굴로 교체하게 될 것이다. 성관계가 가능한 로봇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기술 수준은 인공일반지능(AGI) 개발에 요구되는 기술의 수준보다 높지 않다. 굳이 인공일반지능을 탑재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대량언어모델보다 조금 더 발전된 수준의 대화가 가능하면서 물리적으로 성적 만족을 줄 수 있는 로봇이 등장하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섹스봇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기술이 이 정도로 발전되면 이성 간 애정 관계나 가족관계라는 것이 전반적으로 무의미해지게 된다.

2018년 전 세계 게이머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끌어낸 인터랙티브 드라마,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Detroit: Become Human)’에서는 인공지능 로봇을 배우자와 자녀로 삼으려 하는 조연 캐릭터 토드가 등장한다. 토드의 인물설정은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때문에 기존의 가족 구조가 붕괴해 버린 암울한 미래에 대한 전망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섹스봇 개발 기술이 궤도에 오르게 되면 실제 인간, 특히 이성(異性)은 그저 상대하기 귀찮은 존재가 되고 오로지 로봇만이 위로와 안정감을 선사하는 친밀한 상대로 인식될 것이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을 불문하고 헤어나오기 어려운 성적 대상화 혹은 인간의 도구화 문제, 그리고 전례가 없는 출산율 붕괴와 인구감소 사태를 일으킬 것이 명약관화하다. 딥페이크 범죄는 이런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여러 전조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페이스오프를 시도하는 비틀린 성적 욕망, 이것이 지금 당장은 성적 대상화와 인권침해라는 측면에서만 문제가 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인간관계 자체를 꺼리고 거부하는 사회관계망 붕괴의 한 요인으로 대두될 것이다.

딥페이크 범죄가 정치쟁점화되면서 그 이면의 중대한 의미가 퇴색되는 듯한 감이 있어 안타깝게 느껴진다. 작금의 딥페이크 사태가 갖는 의미를 단순히 여성에 대한 남성의 천박한 성착취 문제로만 국한해서 볼 계제는 아닌 듯하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딥페이크 범죄를 통해 드러난 우리의 시대적 풍조가 향후 남녀 불문하고 타인을 거부한 채 인공지능 기술의 말초적 매혹에 빠져들어 가는 사회성 소실 사태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인간이 아닌 로봇에 애정을 쏟고 로봇과 성관계를 갖는 미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다가올 수 있다. 기독교적 관점으로 보면 기계로 만든 우상과 사랑을 나누는 시대의 도래가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기계와의 육체적 결합을 새롭게 갱신된 인간성, 즉 포스트휴머니티(posthumanity)로 간주할 것인가. 이에 대한 기독교계의 윤리적 반성과 고민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확신한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