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인간의) 지능을 길러주고 철학은 그 정신에 대해 논하며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를 발전시킵니다.”
의생명공학자이자 그리스정교회 신학자인 니콜라우스 대주교가 인간과 인공지능(AI)의 차이와 유사성을 설명하며 한 말이다. 그리스 테살로니키대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신학의 길로 들어선 니콜라우스 대주교는 27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AI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관점: 봉사자인가 지배자인가?’ 심포지엄의 기조 강연자로 나섰다. 세계 총대주교청 소속 한국정교회대교구(교구장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대주교)의 설립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날 행사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CBCK·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총무 김종생 목사)가 공동 주최했다.
니콜라우스 대주교는 ‘AI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관점’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지능은 영리함과 관련이 있으나 지혜는 마음, 즉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과 관련이 있다”며 “AI는 지능 측면에서 인간을 능가할 수도 있지만 지혜의 특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 AI에 부여된 ‘딥 마인드’란 용어는 이런 면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 AI는 (인간 만큼의) 깊이가 없고 마음과도 관련 없기 때문”이라며 “양심과 자유의지 등이 인간의 깊이를 설명하는 요소며 이들에 호소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교”라고 설명했다.
그리스 정교회와 정부 기관 등에서 생명윤리 전문가로 활동하는 그는 “과학과 기술은 하나님이 허락한 선물이자 축복”으로 인정하면서도 날로 발전하는 AI 기술에 대해 교회가 경계해야 할 측면이 분명 있다고 지적했다. 니콜라우스 대주교는 “AI 로봇에 대한 절대적 의존으로 인간의 정신과 마음이 완전히 노예화되는 현상이 우려된다”며 “교회는 AI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AI의 성공에서 잠재된 위협은 방대한 지식을 갖춘 이 시스템의 성공에 대해 인간이 오만한 자만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라며 “스스로 전지전능한 존재가 됐다는 환상은 유일하게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을 저버리고 무자비한 존재가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사례로는 성경에 등장하는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타락(창 3:5~6)과 바벨탑 사건(창 11:4~9)을 들었다.
AI 알고리즘으로 인한 정보의 편향성에 대한 우려도 전했다. 그는 “창조자가 창조물에 의해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며 “알고리즘의 선택은 인간의 의견 형성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이를 아주 신중하게 개발하고 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AI 시대를 맞아 갖춰야 할 자세로는 ‘AI가 인간을 파괴할 것이라고 지레 겁먹지 않기’ ‘AI 의존도 낮추기’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기’를 들었다. 니콜라우스 대주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책임은 하나님의 인도와 예언자적 통찰을 통해 이 현상을 올바르고 침착하게 평가하는 것”이라며 “교회는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윤리적으로 신중하게 이 기술을 사용하자고 제안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지혜가 지능을 지배할 수 있도록 은총 안에서 거룩을 실천하는 영적 삶으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심포지엄에는 조성암 대주교와 이용훈 주교, 김종생 목사 등 공동 주최단체 대표뿐 아니라 정교회 세계 총대주교인 바르톨로메오스 총대주교도 축사를 전했다. 바르톨로메오스 총대주교는 한의종 알렉산드로스 신부가 대독한 축사에서 “우리 교회들은 그리스도인의 증언과 형제적 협력, 사랑의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조화롭게 협력해야 한다”며 “AI가 현대 세계에 긍정적이고 안전하며 윤리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대화와 상호 존중을 통해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글·사진=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