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곳에서 꿈을 찾았어요.”
탈북 꽃제비 출신 이심일(가명·39)씨는 여명학교(교장 조명숙)에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했다. 초등학교 졸업도 못 한 채 두만강을 건넜던 그는 2011년 여명학교를 졸업한 뒤 지금은 교사로 탈북 학생들을 돕고 있다. 이 씨는 27일 여명학교 개교 20주년 기념식에서 “언젠가 북한에 문이 열리면 그곳에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서울 강서구 세현고 체육관에서 열린 기념식은 감동의 물결로 가득했다. 여명학교는 국내 최초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로 2004년 개교 이후 421명의 탈북 청소년들에게 학력 인정 교육을 제공했다. 23명의 학생과 8명의 교사로 시작한 학교는 이제 재학생 96명, 졸업생 421명을 배출하며 탈북 청소년 교육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행사에 앞서 학생들은 방문객들에게 직접 요리한 떡국과 반찬을 제공하며 설거지와 청소까지 도맡았다. 재학생 김은정(19)양은 “우리 학교는 통일을 준비하는 곳”이라며 “통일을 기대하고 준비하는 마음이 참가자들에게도 전달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학교 복도에는 ‘통일 마중 가자’ ‘통일 신문’등의 학생 메시지와 탈북 과정에서 겪은 인권 침해를 묘사한 그림들이 전시됐다. 학생들은 20주년을 맞아 특별 전시회에도 준비했다. 전시회는 ‘학생들이 느끼는 여명학교-회복 성장 감사’를 주제로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석고붕대로 표현한 작품은 학생들이 여명학교에서 경험한 ‘회복’을 상징했고 직접 제작한 기념 티셔츠는 ‘감사’를 담았다. 티셔츠는 텀블벅을 통해 판매 중이며 수익금은 학생들을 위한 재정에 쓰일 예정이다.
재학생 이수연(17)양은 “여명학교에 와서 한국 생활의 어려움을 회복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치유받았다”고 말했다. 교사 오수찬(31)씨는 “학생들은 여전히 사회적 편견과 싸우고 있지만 꾸준한 헌신과 후원 덕분에 학교가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기념식은 오후 7시 조명이 비추는 체육관에서 차분히 시작됐다. 사회자는 “여명학교는 단순한 학교가 아닌 탈북 청소년들이 통일의 미래와 꿈을 찾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3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지난 20년간 여명학교의 성과와 도전을 함께 기념했다.
학교 설립부터 함께했던 홍정길 남서울교회 목사는 축사에서 “여명학교 학생들이 남북통일의 준비자”라며 독일 통일처럼 우리에게도 갑작스럽게 통일이 찾아올 수 있음을 말했다. 통일부 김수경 차관과 국회의원 한정애 의원은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적 지원 필요성을 강조하며 여명학교와의 협력을 약속했다.
조영아 상지대 교수는 20년간의 교육 성과를 담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여명학교 졸업생과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교육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점 이상을 기록했고, 특히 교사와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조 교수는 여명학교의 성공 요인으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교육철학과 이를 실천한 교사들의 헌신을 꼽았다.
후원자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이문식 ㈔여명 이사장은 남서울교회, 법무법인 태평양, 이지스자산운용 등 주요 후원 기관에 감사패를 수여했다. 오랜 후원자인 배우 차인표 씨는 “탈북민들을 돕는 일이 곧 통일로 가는 길”이라며 “탈북민 100명을 품는 것이 2천만 북한 동포를 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차인표 삼촌 사랑해요”라며 감사를 전했다.
기념식에서 재학생들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와 ‘조이풀 조이풀’을 율동과 랩으로 선보이며 활기를 더했다. 한 학생은 “지난 20년간 여명학교를 지켜주시고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로 이겨낼 힘을 주신 하나님께 (공연을) 올려드린다”라고 고백했다.
여명학교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2010년 대안학교 인가를 받았지만 은평구로의 이전 계획이 주민 반대로 무산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 강서구의 폐교된 염강초등학교를 임시로 사용하고 있으나 2026년에는 또 다른 장소로 이전해야 한다.
조명숙 교장은 “안정적인 학사 운영이 어렵지만, 선한 꿈을 꾸며 기도하면 결국 이뤄질 것”이라며 “여명학교는 교육을 통한 통일의 모델을 제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교는 앞으로 탈북민과 그 자녀들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북한이탈주민을 아우르는 통합의 공간으로 성장할 계획”이라며 “주간에는 학생 교육, 야간에는 졸업생과 성인들을 위한 취업 지원, 주말에는 지역 주민을 위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여명학교는 지난 20년간의 발자취를 담은 백서를 발간했다. 백서에는 탈북 청소년들의 남한 교육 적응기와 이들이 겪은 어려움, 이를 극복한 과정을 연구한 결과가 담겼으며 교사와 학생들의 생생한 이야기들도 포함됐다.
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