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or보기]최경주·양용은·최호성 우승의 교훈…“거저 얻어지는 건 없다”

입력 2024-09-27 07:00
지난 7월에 열린 PGA챔피언스투어 메이저대회 더 시니어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최경주. AFP연합뉴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이 있다. 올 시즌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남자 프로 골프 선수들에 딱 어울리는 비유가 아닌가 싶다. 젊은 선수들의 승전고는 끊긴 지 오래고 그 역할을 적잖은 나이의 ‘형님’들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파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파수꾼은 최경주(54·SK텔레콤), 양용은(52), 최호성(51·금강주택)이다. 이들은 만 50세 이상 선수들의 활동 무대, 흔히들 시니어투어라 부르는 챔피언스투어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최경주와 양용은은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투어, 최호성은 KPGA투어와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시니어 무대를 병행 활동 중이다.

최경주와 양용은은 한국 남자 골프의 발전을 이끄는 쌍두마차다.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 남자 골프가 세계화의 상징인 PGA투어로 진출하는 물꼬를 튼 당사자들인 데다 지금도 아들뻘, 조카뻘 후배들에게 표상이 되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맏형인 최경주의 이름 앞에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PGA투어 멤버가 된 것도, PGA투어 한국인 첫 우승도 최경주 몫이었다. 통산 8승을 거둔 뒤 만 50세가 된 2020년에 챔피언스투어에 데뷔한 것도 한국인으로는 최초, 데뷔 첫해에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을 가져간 것도 챔피언스투어 역사상 한국인 최초였다.

그의 선구자적 역할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경주는 지난 7월에 열린 메이저대회 더 시니어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PGA투어와 챔피언스투어 통틀어 개인 첫 메이저 우승일 뿐만 아니라 챔피언스투어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대회 우승이었던 것.

최경주의 뒤를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PGA투어에 진출한 양용은은 통산 2승이 있다. 그중 2009년 PGA챔피언십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대회에서 양용은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꺾고 아시아 국가 출신으로는 최초로 ‘메이저 챔프’에 등극했다.
어센션 채리티 클래식에서 챔피언스투어 생애 첫 승을 거둔 양용은. AFP연합뉴스

2022년에 챔피언스투어에 데뷔한 양용은은 지난 9월 초에 어센션 채리티 클래식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챔피언스투어 데뷔 3년, 72번째 출전 경기 만에 거둔 감격적인 우승이었다. 그 우승으로 양용은은 다시 한번 자신이 ‘강호 킬러’임을 입증했다. 2009년에 우즈에 이어 이번에는 챔피언스투어 최강자 베른하르트 랑거(독일)가 제물이 됐기 때문이다.

‘형님’들의 우승 소식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늦깎이 골퍼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낚시꾼 스윙’ 최호성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승전고를 울렸다. 올해 시니어투어에 데뷔한 최호성은 지난 15일 일본 지바현 지바CC에서 끝난 일본 시니어 오픈 골프 챔피언십에서 장익제(51·휴셈)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 대회 한국인 첫 우승이었다.

이들의 우승은 팬들에게는 감동과 울림을,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그만큼 값진 우승이라는 얘기다. 혹자는 시니어투어라며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그 가치는 절대 폄훼되어서는 안된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1980년에 출범한 챔피언스투어는 현역 시절 화려한 명성을 날렸던 ‘레전드’들의 경연장이다. 우선 PGA 챔피언스투어를 보자. 화려한 면면이다. 작고한 아널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를 비롯해 PGA투어 39승의 톰 왓슨과 20승의 헤일 어윈, 통산 15승의 프레드 커플스(이상 미국) 등이 이 투어를 거쳐 갔거나 활동 중이다.

그뿐만 아니다. ‘흑진주’라는 닉네임으로 PGA투어서 통산 34승을 거둔 비제이 싱(피지), 19승의 ‘황태자’ 어니 엘스와 레티프 구센(이상 남아공), 스티브 스트리커(미국) 등이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은 LIV골프로 이적한 필 미켈슨(미국)도 챔피언스투어 4승이 있다. 1975년 12월 30일 생인 우즈는 규정대로라면 2025년 12월 30일이 되면 챔피언스투어 입회 자격이 주어진다.

따라서 이들의 퍼포먼스 능력은 전성기 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를 제외한 쇼트 게임과 퍼팅 등은 외려 PGA투어 선수들에 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드라이버 비거리가 턱없이 짧은 것도 아니다.

장타부문 ‘톱16’는 평균 290야드를 날린다. 그중 올해 ‘루키’인 데이비드 브랜슨던(미국)은 자그마치 303.7야드를 날려 이 부문 1위다. 평균 321야드로 PGA투어 장타 1위에 오른 카메론 챔프(미국)와는 17.3야드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지난 15일 막을 내린 일본 시니어 오픈 골프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최호성. 연합뉴스

그런 점에서 최경주, 양용은, 최호성의 우승은 절대 요행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금욕주의에 가까운 자기절제와 피나는 노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들 3인방은 이구동성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통틀어 골프에 대한 열정이 가장 뜨거웠던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한다.

최경주는 좋아하던 와인을 아예 입에 대지 않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탄산음료에 이어 지금은 커피마저 끊은 상태다.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다. 한 마디로 몸에 해로운 것, 다시 말해 골프에 방해가 되는 것은 절대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양용은도 최경주 못지않다. 그는 매주 5회 이상 웨이트 트레이닝과 10년 가까이 간헐적 단식을 통해 체중을 82~83㎏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남보다 하나라도 더 하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독려하고 있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최호성의 노력 또한 눈물겹다. 그는 고등학교 때 참치 실습장에서 오른손 엄지 첫 마디가 잘려나간 사고를 당한 4급 장애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참이 지나고서야 골프를 시작한 그는 골프채를 처음 잡은 지 입문 1년 만에 세미프로가 됐다. 그것만으로 그가 흘린 피땀의 정도는 가늠되고 남는다. 2019년에 전 세계를 강타했던 ‘낚시꾼 스윙’도 스스로 고안해낸 생존 전략 중 하나였다.

많은 후배가 3인방의 우승 뒤에 축하와 존경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들이 그런 호사를 누릴 자격은 충분하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후배들에게 귀감 자체다. 마치 ‘나를 따르라’며 솔선수범하는 듯하다. 참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들이다. 이즈음에서 PGA투어에서 활동하거나 PGA투어 등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선수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고 싶다. ‘나는 과연 형님들처럼 열심히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뒤 거기서 답을 찾아보라고.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