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동료 선수들보다 10년 이상 출발이 늦었음에도 골프채를 잡은 지 5년 만에 투어 프로가 됐다. 그리고 올 시즌 KPGA 2부인 챌린지투어 통합 포인트 4위에 자리해 이변이 없는 한 내년 KPGA투어 시드 획득이 유력하다. KPGA는 챌린지투어 통합 포인트 상위 10명의 선수에게 다음 시즌 KPGA투어 출전권을 준다.
올해로 KPGA 입회 8년 차를 맞은 최장호(29)의 골프 인생은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부터’다. 유행가 가사처럼 ‘내 나이가 어때서 골프하기 딱 좋은 나이야’를 되뇌며 늦었지만 결코 늦지 않았다며 오늘도 목표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고 있다.
최장호는 중학교 3년간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축구를 그만뒀다. 그러다 중3 겨울방학 때 우연한 기회에 접한 골프에 푹 빠졌다. 골프를 하겠다고 부모님을 졸랐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해보라’는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면서 그는 골프 인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스스로 택한 길이었기에 후회는 없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최장호는 “막상 허락을 받았는데 막막했다. 체육 특기자로 진학할 입상 성적이 없어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체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부산 골프고등학교가 생겨 그곳에 진학했다”면서 “처음에는 동네 연습장 프로님한테서 배웠다. 그러다가 부산의 유명한 5형제 프로 중 한 분인 김석종 프로님으로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고 골프 입문 초기를 뒤돌아보았다.
자신의 골프 기반을 만들어준 김석종 프로가 갑자기 삶의 터전을 중국으로 옮기는 바람에 오상윤 프로가 스승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오 프로 문하에서 꿈에 그리던 프로가 됐다. 2017년에 군에 입대해 복무를 마친 이후로는 끊임없이 KPGA투어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1부 투어의 높은 벽만 실감한 채 번번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면서 골프를 늦게 시작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최장호는 “어렸을 때는 골프를 늦게 한 것에 대한 후회를 많이 했다”라며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좀 더 철이 들고 난 뒤에 시작했던 게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했기 때문에 주위에서 늦었다고 해도 별로 늦었다는 생각 안 하고 그냥 열심히 했던 것 같다”고 입문 5년 만에 정회원 자격을 획득한 원동력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골프를 대하는 올바른 마음가짐을 정립해준 첫 번째 은사 김석종 프로에 대한 감사를 빼놓지 않았다. 최장호는 “김석종 프로님 밑에 있을 때 진짜 너무 공을 많이 쳤다. 프로님이 화장실도 못 가게 연습을 시키셨다”면서 “그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냥 치라는 대로 너무 많이 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연습량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최장호의 주특기는 아이언과 퍼트다. 하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자신의 주특기를 적극 활용하지 못했다. 그는 “드라이버 비거리가 평균 260m 정도로 멀리 치는 타입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기를 쓰고 멀리 보내려 했던 것 같다. 당연히 정확도가 떨어졌다”면서 “어느 날 문득 ‘나는 아이언을 잘 치는 애인데…’라고 정신을 차리게 됐다. 그래서 올해는 드라이버 비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아이언으로 승부하는 내 플레이에 집중했다. 그랬더니 성적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현재의 드라이버 비거리에 머물 생각은 전혀 없다. 그는 “KPGA투어는 챌린지투어보다 대회 코스 전장이 길어 현재의 드라이버 비거리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잘 안다”면서 “올겨울에 체력 훈련을 열심히 해서 드라이버 비거리를 현재보다 더 늘리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에게는 롤 모델이 있다. ‘한국산 탱크’ 최경주(54·SK텔레콤)다. 최경주가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챔피언스투어에서 거둔 통합 10승(PGA투어 8승, 챔피언스투어 2승)의 성적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골프 선수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닮고 싶은 것이다.
최장호는 “최경주 프로님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선수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천생 골프 선수라 생각하고 그에 걸맞은 몸 관리를 하고 공이 안 돼도, 컷 탈락을 하더라도 계속 꾸준히 대회에 출전하는 그 열정 자체가 대단하신 것 같다”면서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멘탈적인 것을 본받고 싶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목표도 열심히 꾸준히 잘 치는 선수가 됐다. 그는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거고 꾸준히 잘 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면서 “우승도 물론 좋지만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는 그런 선수보다는 잘 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재차 자신의 미래상을 강조했다.
올 시즌 챌린지투어가 3개 대회가 더 남아 있지만 최장호의 내년 KPGA투어 공식 데뷔는 사실상 확정이다. 그는 “1부 투어에 가면 시드 유지를 목표로 할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 지금껏 해왔던 방식대로 벼락치기가 아닌 매일 꾸준히 연습할 것이다. 그리고 그걸 발판 삼아 챌린지투어에서 처럼 자신 있게 내 골프를 하도록 하겠다”고 결기를 내보였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