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 엄마 밑에서 자란 소녀, 무슬림 나라에서 ‘영혼의 엄마’로

입력 2024-09-23 14:22
이미숙(왼쪽 두 번째 주민을 안아주는 인물) 선교사가 지난해 지진 피해 지역인 하타이 주민을 만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회복 그룹 모임을 주관하고 있다. 이미숙 선교사 제공

인구의 98%가 이슬람교 신자인 나라. 법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지만 사회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기독교로 개종한 이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나라. 대한민국과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튀르키예(Turkiye)의 오늘이다. 하지만 복음의 불모지 같은 이 땅에서 당당히 자기 이름을 걸고 32년째 선교의 길을 걷고 있는 이가 있다. 무슬림의 나라에서 ‘영혼의 엄마’가 돼 준 이미숙(62) 선교사다.

최근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세계 한인 여선교사 영성수련회 현장(국민일보 2024년 9월 19일자 35면 참조)에서 만난 그에게선 고된 선교 현장에서 누적된 피로감 대신 어디든 달려 나갈 수 있을 듯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미숙 선교사가 최근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세계 한인 여선교사 영성수련회 현장에서 그 동안의 사역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DNA미니스트리 제공

“외로울 때도 많죠. 자기 이름도 없이 ‘선생님’으로 불리는 선교사들이 대부분이고요. 무슬림 지역 선교 특성 상 고독하게 인내하며 사역하다 비자 문제로 추방당하는 가슴 아픈 일들도 수시로 벌어집니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이 이 모든 것을 이겨내는 동력이 됩니다.”

그는 선교지 만큼이나 신앙의 불모지였던 가정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서 봉양 많이 하기로 정평이 나 불자들 사이에서 보살로 불렸다. 그런 그에게 예비된 복음의 씨앗이 떨어진 건 유치원 시절이었다. 당시 부모님이 막내에게 좋은 유치원을 보낸다며 찾아 보낸 곳이 교회 선교원이었던 것이다.

집안의 유일한 기독신자였던 이 선교사의 신앙은 빠르게 성장했다. 그는 “고교 시절엔 50일 100일 철야기도를 잇따라 하기도 했었는데 성도들 사이에서 ‘아기 권사’라는 별명이 붙게 됐을 정도였다”며 웃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대학 시절 예수전도단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선교에 불을 댕겼다.
이미숙(앞줄 오른쪽 첫 번째) 선교사가 지난해 지진 피해 지역인 하타이 주민을 만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회복 그룹 모임을 주관하고 있다. 이미숙 선교사 제공

1990년 첫 선교지인 인도에 둥지를 트고 사역하던 중 사역 리더였던 미국 선교사와 함께 사역 기간과 지역을 놓고 일주일째 금식기도를 하다 튀르키예로의 물꼬가 트였다. “기도 중에 ‘고 투 터키(옛 국호)’라는 음성이 들렸어요. 이사야 54장 말씀을 붙들고는 장막터를 넓혀 황폐한 성읍을 사람 살 곳을 되게 하겠다는 다짐을 했지요.”

이스탄불에 도착해 언어를 배운지 6개월 만에 시작한 사역은 거리의 아이들을 찾아나서는 일이었다. 마약과 본드 흡입에 중독된 아이들에게 일단 밥부터 먹였다. 하나 둘 늘어나던 아이들의 수가 어느새 200명을 넘어섰고 이 선교사는 ‘영혼의 엄마’로 불렸다.

동양의 미혼 여성이 청소년들을 개종시키려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문제가 터졌다. 현지 신문과 방송에 이를 비판하는 보도와 시사 프로그램을 송출하면서 법정에까지 서게 됐다. 하지만 지난한 법정 다툼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극적인 도구가 됐다.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믿음으로 당당히 맞섰습니다. 최종 승소가 결정되던 날 판결문이 지금도 생생해요. ‘전 세계적으로 어린아이와 과부들을 돌보는 것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다. 한 사회가 이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선교사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사회 스스로 반성하고 자문해봐야 한다’ 하나님의 반전 참 멋지지요(웃음).”
이미숙 선교사가 사역 중인 교회의 지난 1일(현지 시간) 주일예배 현장. 이미숙 선교사 제공

이후 이 선교사의 사역은 윤락 여성들을 위한 회복으로 확장됐다. 지난해엔 지진 피해로 아픔을 겪은 튀르키예 중남부 지역 주민들을 찾아가 마음 돌봄 사역을 펼쳤다. 현재는 현지인 목회자와 함께 튀르키예 성도들의 신앙 모판을 다지고 있다. 그는 올해 2년차 세계 한인 여선교사회 회장직을 수행 중이기도 하다. 전 세계 190여개국 1만 5000여명에 달하는 여선교사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동료이자 또 하나의 엄마 같은 사역이다.

“선교사의 마음은 선교사가 누구보다 잘 알지요. 엄마와 여성이 회복되면 그 영향력은 자연스레 남편과 아이들, 나아가 주민들과 지역사회, 국가로 확장됩니다. 여선교사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어디에서든 잘 발휘할 수 있도록 기도로 응원해주세요.”

이스탄불(튀르키예)=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