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0년대 대학을 다니던 기독 청년으로서, 당시 독재 정권 아래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했다.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도 그 활동이 신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리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1987년 뜻밖에 겨자씨 형제단(당시 대표: 박철수 목사)을 통해 처음으로 로잔 운동을 알게 됐다.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가 하나님 나라 운동의 두 날개라는 로잔 운동의 메시지를 듣고, 나는 세상을 선하고 공의롭게 변혁하는 것이 내 인생의 사명이 되었다. 이후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난 30년 동안 기독교 시민사회 운동에 헌신하게 됐다.
비록 로잔대회에 직접 참가해본 적은 없었으나 존 스토트와 로날드 사이더 같은 로잔 운동의 주요 인물들의 글을 읽으며 그 정신을 이해하고 길을 찾았다. 나는 많은 동료와 함께 활동하면서 로잔 정신을 나의 사역과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 이 정신은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결합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새롭게 깨닫게 해줬다.
로잔 운동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사회적 참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고민하던 청년 학생 젊은 학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갔다. 하지만 이 운동은 주로 선교단체나 새로운 복음주의 청년, 학생 소그룹을 통해 소개되고 퍼졌다. 특히 1987년에 창립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을 비롯해 정치, 경제, 통일과 평화,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복음주의 운동 단체들이 생겨났다. 1991년 창간된 월간 ‘복음과 상황’은 평범한 복음주의 청년들이 하나님 나라 세계관을 깨닫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러한 활동들은 모두 로잔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나도 1993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간사로 활동을 시작해 남북나눔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성서한국 등에서 활동하며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실천해왔다. 이 사역들은 당시 한국에서는 낯설었지만, 오늘날 많은 영역에서 큰 전환점을 이루었다. 2014년에 창립된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도 창립 당시 정관에 로잔 정신 실천을 명시하며 시작됐다.
2024년에 열리는 4차 로잔대회를 맞이하며, 나는 한국 교회가 로잔 정신의 기초인 ‘총체적 선교’ 개념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총체적 선교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참여가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아직도 한국 교회에서는 복음 전도와 해외 선교를 제외한 다른 모든 활동이 부차적이거나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경향이 크다. 이 점은 매우 안타깝다.
또한, 세계 복음화와 선교 운동의 중심이 비서구권으로 확실히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구 유학파 남성들이 복음주의 담론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고민스럽다. 1989년 마닐라 대회에서는 필리핀의 민주화 문제가, 2010년 케이프타운 대회에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문제가 다뤄졌는데, 2024년 인천 대회에서는 한국의 분단과 평화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다뤄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매우 서글프다. 하나님의 복음과 선교 정신이 국제 대회에서 진행되면서도 이와 같은 중요한 현안들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 참으로 아쉽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2022년 말부터 몇몇 복음주의 사회선교단체, 청년학생 선교단체들과 함께 ‘로잔너머’와 ‘로잔포스트’를 만들어 여러 번의 이슈 포럼과 공청회를 열고, 그 결과물을 국제본부와 한국 준비위원회에 전달했다. 물론 이것이 대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총체적 복음과 균형 잡힌 선교, 현실과 다음 세대를 고려한 복음 운동이 이번 대회를 통해 더 잘 반영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로잔 정신 실천 경험은, 2005년 성서한국 운동에 참여하며 수많은 청년이 책임 있는 신앙인의 삶을 고민하지 않았던 젊은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이었다. 하나님 나라 구현을 자기 사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큰 감동을 하였다. 또한, 이라크 한국파병,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등과 같은 사건에서 복음주의 교회와 단체들이 사회적 참여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것 역시 로잔 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21세기를 지나며 한국에서 기독교는 ‘개독교’라는 비난을 받으며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가나안 성도가 증가하는 가운데, 기독교와 교회는 소통과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스러운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특히 여성과 다음 세대의 목소리를 어떻게 경청하고 섬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교회가 동성애, 타종교, 공산주의, 낙태 문제 등에 대해 깊은 성찰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대에만 치중하는 모습이 과연 21세기 선교에 적합할지 의문이 크다.
이번 4차 로잔대회가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에 깊이 있는 성찰과 대안을 모색하는 장이 되길 바란다. 과거의 성취에만 집중하는 잔치가 아니라, 한국과 세계 교회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진지하게 논의하며 총체적 복음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
구교형 목사는 한국 복음주의 신앙과 사회 참여를 통합하기 위해 힘써온 목회자다. 그는 성서한국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 교회가 신앙의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일상과 고충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택배기사로 일한 경험을 책으로 엮어 출간하기도 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