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같은 선물, 로잔 정신과 나의 사역

입력 2024-09-23 11:42
이승장 목사.

로잔 정신은 청년 대학생 복음 운동가로서 내 사역의 전환점이 된 벼락같은 선물이었다. 로잔 50주년 기념으로 한국에서 로잔 4차 대회를 하게 된 것을 기뻐하며, 로잔대회가 내게 준 은혜를 믿음의 친구들과 나누고자 한다. 이 글은 논문이 아닌 개인 경험과 편견을 적은 글로 부족한 점이 많다.

1972년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였다. 로잔대회 기획책임자로 한국교회의 참여를 구하러 온 폴 리틀(미국 IVCF 간사 출신, 당시 트리니티 신학교 전도학 교수)을 만나게 됐다. 당시 나는 대학생성경읽기회(UBF) 간사 6년 차로 신촌에서 사역 중이었고, 폴 리틀이 교회 지도자들을 방문하는 사흘 동안 그를 수행하며 섬겼다. 한경직 목사님의 사택 좁은 응접실에서 나눈 대화 속에서 로잔대회의 목적과 성격, 방향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역사적인 순간이었지만, 당시에는 카메라도 녹음기도 없어 기록으로 남기지 못해 아쉽다.

그해 봄에는 존 스토트를 만났다.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국제복음주의학생연합(IFES) 수양회에서 그가 주강사로 참석했는데, 나는 ‘복음주의’가 무엇인지 깊이 배울 수 있었다. 존 스토트 목사의 사도행전 강해와 강해설교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미국인 선교사에게서 책과 설교 테이프를 들으며 흠모했던 그의 가르침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이후 성서유니온 대회에 함께 가는 택시 안에서 네 시간 넘게 존 스토트와 대화를 나누는 기회도 있었다. 그가 1974년 로잔 언약 입안위원회 의장으로 로잔대회의 두뇌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 깊다.

로잔대회의 <로잔 언약>을 처음 접했을 때, 특히 제5장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교회나 선교단체는 독재와 사회 부조리에 담대히 항거하지 못했으며, 분단의 시대에 서로 증오하고 전쟁 위협만 반복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개인 구원과 경건훈련만 강조하는 상황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1947년 칼 헨리가 지적한 ‘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기독교인들이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교회와 단체들은 물량적 성장에 몰두하며, 미국식 근본주의 신학에 갇혀 극우 독재 정권에 동조하고 정치·사회적 문제에 침묵했다. 로잔대회에 참가했던 대표들조차 두려워서 귀국 후 이런 모임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다.

내가 섬기던 단체는 급성장하면서 지도자의 독재와 인권 유린, 신학교육 배제, 재정 착복 등의 문제를 드러냈다. 나는 이러한 행태에 반발해 동역자들과 함께 개혁운동을 벌이다가 추방당하고, 기독대학인회(ESF)로 새로 출발했다. 그 이후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게 됐으니 이는 로잔 정신의 영향을 받은 덕분이다.

1979년 런던신학교에 입학해 복음주의 대학생운동, 특히 케임브리지 기독학생연합(CICCU)으로 시작된 역사를 연구하면서, 로잔 정신이 영국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전통을 회복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로잔대회는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전 세계 기독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남미 IFES 간사 출신인 르네 파디야와 사무엘 에스코바르 등의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이바지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1984년, 나는 <소리>라는 무크지를 발간하며 로잔 언약을 한국교회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당시 신군부 독재 시절이어서 로잔 언약은 한국교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점차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1987년 민주화운동과 맞물려 복음주의권에서 사회 변혁을 꿈꾸는 운동이 생겨났다.

1997년부터 학원복음화협의회와 코스타 운동을 섬기며 로잔 정신이 교회나 선교단체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현실을 관찰하게 됐다. 대형교회들이 성장과 경영에만 몰두하면서 ‘온전한 복음과 총체적 선교’를 실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로잔 정신을 지키고자 노력해왔다.

마지막으로 로잔 4차 대회를 섬기는 모든 동역자께 감사드리며, 이 집회를 통해 한국교회에 두 가지 각성이 이뤄지길 기도한다. 첫째, 교회와 학생선교단체들이 연합해 복음 전도에 힘쓰고, 교회가 다음 세대 선교에 총력 지원하길 바란다. 둘째, 한국교회가 세계를 섬기며 선도할 시대적 과제를 기쁘게 떠맡길 기대한다. 한국이 세계의 제사장 나라, 목자 나라로서 역할을 감당하는 계기가 되길 기도하며, 로잔대회를 통해 한국교회가 온전한 복음과 총체적 선교를 실천하는 영광스러운 사역에 앞장서기를 소망한다.

이승장 목사는 한국 교계에서 청년 사역의 대부로 불리는 목회자다. 그는 전남대학교 전기공학과에서 학업을 시작한 후, 대학생성경읽기회(UBF)를 통해 회심하고 본격적으로 청년 선교 사역에 나섰다. 이후 런던신학교(London School of Theology)에서 성경 해석학을 전공하며 신학적 기반을 다졌고, 한국에 돌아와 기독대학인회(ESF)와 학원복음화협의회(학복협)의 총무와 상임대표로 활동했다. 코스타(KOSTA) 국제 대표로 섬기며 청년 선교에 헌신해 왔다.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 교회와 갈보리교회를 담임했으며, 예수마을교회를 개척해 담임목사로 활동하다가 2012년에 은퇴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