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한 아파트 관리소장 김모씨는 최근 단지를 순찰하다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단지 내 식물 이파리에 조그마한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었다. 나뭇잎에는 거미줄과 비슷한 흰색의 얇은 그물이 가득했다. 그물 안에는 송충이처럼 보이는 곤충 5~6마리가 떼를 지어 나뭇잎을 갉아 먹고 있었다. 김씨는 “단지 내 절반 넘는 나무들이 같은 피해를 보고 있다. 나무가 죽어간다는 민원이 요즘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황모(26)씨는 서울 종로구 청계천을 따라 뛰던 중 자신의 어깨와 팔에 무더기로 떨어지는 송충이를 봤다. 황씨는 “당시 주변을 살펴보니 나뭇잎 일부가 거미줄 같은 그물로 둘러싸여 있었다”며 “곤충들이 닿은 부위가 두드러기처럼 빨갛게 달아오르고 간지러웠다”고 말했다.
이 벌레의 정체는 바로 미국흰불나방 유충이다. 송충이와 비슷하게 생긴 미국흰불나방 유충의 평균 길이는 약 30㎜ 정도다. 떼를 지어 사는 것이 특징이다.
해당 유충은 과거 과수원이나 농지 등에서 주로 발견됐다. 다만 최근에는 도심 한복판에 출몰해 피해를 키우고 있다. 올여름 역대급 더위가 이어진 탓이 크다. 산림청 관계자는 “미국흰불나방 유충은 통상 매년 6월과 8월 사이 두 번 정도 부화하는데, 올해는 더운 날들이 많아 9월에도 부화한 유충들이 다수 생존해 피해를 더 키웠다”고 말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는 지난달 23일 미국흰불나방유충으로인한 피해가 지난해보다 15% 정도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전국 산림병해충 발생 예보 단계를 ‘주의’로 상향했다.
미국흰불나방 유충들은 주로 활엽수나 과일나무 등의 나뭇잎을 갉아 먹으며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거미줄 같은 그물을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한다. 다 자라난 성충 한 마리는 600여개의 알을 낳고 개체 수를 빠르게 늘려나간다. 서울시는 미국흰불나방 유충의 번식을 막고, 피해를 줄이고자 지난해부터 집중 방제 작업을 시작했지만, 도심 피해는 더 커지고 있다.
양영철 을지대학교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유충들이 다 자라나면 각자 흩어져 살기 때문에 떼 지어 활동하는 부화 초기에 방제 작업을 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평소 유동 인구가 많은 한강이나 청계천 인근에서 약물을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양 교수는 “국소적으로 나뭇가지에 화재를 내는 등 다양한 방법을 검토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충들이 서식하는 나뭇가지 일부를 잘라내고, 이를 태우는 방식으로 방제에 나서야 한다는 설명이다.
글·사진=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