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않고 인공지능 기술의 혁신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2022년 11월, 오픈AI가 트랜스포머 모델로 우리 사회 전체에 준 충격과 그에 대한 대중의 열광적 반응은 약 2년이 지난 지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챗GPT, 옵티머스 젠2, 그리고 SOAR 같은 혁신적 기술이 연이어 공개되면서 인공일반지능(AGI) 등장에 관한 관심과 기대는 매번 더 늘어나는 중이다. 거대 기술기업, AI 스타트업, 그리고 미디어 업계 전반에서 내놓고 있는 한없이 낙관적인 전망 또한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런 동향과는 반대로 국내와 해외 대중문화계에서 인공지능 관련 작품들의 인기는 한풀 꺾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2023년 영화 ‘메간’이 제작비의 7배가 넘는 수익을 거두는 데 성공한 이후로는 인공지능이 중심소재로 채택된 영화나 드라마가 주목받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올 6월 국내 극장가에 영화 ‘원더랜드’가 개봉됐지만 흥행부진 때문에 채 한 달도 못 돼 IPTV 서비스로 이전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 영화는 사별한 이들의 인격을 인공지능 기술로 재현하는 서비스를 중심소재로 삼고 있으며 화려한 출연진(탕웨이, 박보검, 공유 등)을 앞세워 개봉 전 어느 정도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그렇지만 개봉 후 확인된 흥행성적은 크게 실망스러웠다(손익분기점 290만 관객, 실제 관람객 수 62만 남짓). 이런 현상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서사의 중심에 둔 작품들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심리적 피로감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현실에서 실제 개발되고 상용화된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지고 대중문화 속 허구적인 인공지능 기술에 관한 관심이 낮아지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그동안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대중문화계가 인공지능이라는 창작 소재를 과하게 소비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대중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실태를 이전보다 더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술적 특이점은 레이 커즈와일이나 닉 보스트롬 같은 특이점주의자들이 예견한 것처럼 빠르게 그리고 극적인 방식으로 도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세간에 점차 퍼지고 있다. 샘 알트먼이 광고하듯 강조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기하급수적 성장(exponential growth)’에 대한 신념도 최근에는 여러 방면으로 도전받고 있다.
그렇지만 인공일반지능이 등장하기를 바라는 염원 자체는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실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는 한때 특이점주의자들이 전망한 것보다 더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더딘 속도가 오히려 인공일반지능 개발 전망에 현실감을 더해주고 있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 같은 초현실적인 기술혁신은 당분간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신 긴 시간에 걸친 인류의 끈질긴 기술개발 노력으로 인공일반지능 개발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더 확고해지고 있다.
염원이 없다면 믿음은 생명력을 잃는다. 인공일반지능 출현에 대한 광범위한 확신은 이 기술에 대해 일반대중이 가지고 있는 강한 기대감과 염원을 증명한다. 인공지능 기술은 지금껏 인류가 내놓은 그 어떤 기술도 제시하지 못한 매혹적인 결실을 약속한다. 그것은 바로 더는 다른 인간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는 삶에 대한 약속이다. 혹자는 인류가 인공지능 기술에 몰두하는 심리적 동기로 자기신격화 욕망을 지목한다. 지적 존재자의 창조란 오직 하나님만이 가진 권능인데 인간이 그 권능을 넘보고 있다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타당한 진단이지만 그것을 결정적 동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열광하는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인간관계에 대한 혐오와 실망감일 것이다. 경쟁과 차별이 극심한 사회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고 공동체 의식이 약화된다. 이런 사회는 법과 제도 덕분에 최소한의 질서가 유지되지만 기본적으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순화된 상태로 이어진다. 그러니 당연히 타인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이런 선의가 확장된 공동체 의식이 함양될 리가 없다.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의 사회구조가 가진 이 근본적인 약점을 개인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대안으로 여겨진다. 인간 수준의 지능 혹은 그 이상의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충실하고 지치지 않는 하인 혹은 동반자가 나타나 각자의 삶에 필요한 노동력과 효용을 무한하게 제공한다면 우리는 굳이 타인과 경쟁하거나 갈등을 겪으면서까지 재화와 서비스를 희구할 필요가 없다. 이는 인류의 입장에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개개인의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인간관계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인간-인공지능 상호작용(HAI) 안에서 삶의 만족을 손쉽게 얻게 해주는 것, 이것이 인공지능 기술의 진정한 목표이자 정체다.
영화 ‘그녀’는 인공지능 기술의 이 탈사회적 목표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이 수작인 이유는 인간-인공지능 상호작용이 실제 타인과의 관계를 약화시키는 양상을 면밀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정도가 강해질수록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결속은 눈에 띄게 약화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만일 이성과 나누는 감정적 교류와 성관계를 완벽하게 대체하는 고성능의 섹스봇이 개발될 경우 우리 사회는 현재의 저출산 추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심각한 초저출산 사태를 맞이할 것이 분명하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기독교적 인간이해에 따르면 자기 의지와 타인의 의지 충돌은 인간관계의 상수이며 이 상수를 어떻게 윤리적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온전히 받고 지키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현재의 딥러닝 기술 기반 AI는 온전한 의식이라 할 만한 것을 구현하지 못한 채 오로지 현상에 담긴 통계적 의미(특성들 사이의 연관성)만 들춰낼 수 있는 제한된 기능을 가졌다. 겉으로 보기에 인간과 유사한 판단을 결과값으로 내놓는다고 해서 인공 에이전트를 인간에 따르는 의식을 갖춘 존재자로 단정하는 것은 과도하게 단순한 행동주의적 판단이다.
인간과 인간의 인격적 관계가 인간-인공지능 상호작용으로 충분히 대체될 수 있다는 확신이 강화될수록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은 극단적으로 약화될 것이다. 교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는 신앙공동체의 기반을 원천적으로 붕괴시키는 복음화의 커다란 걸림돌이다. 애초 기본적인 사회성과 공동체 의식 자체가 희박해진 사회에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신앙으로 결속된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가르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교회의 신앙교육은 더 큰 난항을 겪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대처하는 교회의 복음화 방안 갱신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