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아내 마중 나갔다가”… 80대 노인 급류에 참변

입력 2024-09-22 18:06 수정 2024-09-22 18:10
전남 장흥군 장흥읍 평화저수지에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A씨(89)를 찾기 위해 119 구조대원과 경찰이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 A씨는 22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남소방본부 제공

시간당 70㎜의 극한 호우가 쏟아진 전남 장흥에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던 80대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치매를 앓는 아내를 마중 나갔다가 참변을 당했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이 더욱 커지고 있다.

2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남 장흥군 장흥읍 평화리 한 마을은 침통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지난 21일 오후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A씨(89)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민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A씨는 5년 전부터 이 마을로 귀향해 아내와 단둘이 살기 시작했다. 아내가 치매를 앓게 됐지만 요양병원으로 보내지 않고 직접 간호하며 성심껏 돌봤다고 한다. 매일 재활 치료를 위해 주간보호센터를 갔다 오는 아내를 마중하는 등 마을에서도 ‘잉꼬부부’로 소문이 났다.

극한 호우가 쏟아졌던 21일 오후에도 A씨는 어김없이 집에서 나와 아내를 마중 나갔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 A씨는 대문 앞 도랑에 발을 헛디뎠고 순식간에 급류에 휩쓸려갔다.

A씨 아내를 태운 주간보호센터 버스는 제시간에 집 앞에 도착했지만, A씨는 보이지도 않고 연락이 닿지도 않았다.

버스 기사의 신고로 구조대와 마을 주민들이 어둠 속에서 A씨를 애타게 찾았지만, 결국 하루 만에 인근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마을 이장 고상희(77)씨는 연합뉴스에 “A씨는 미국에서 살다 귀향하셨는데 점잖고 학식도 풍부해 늘 중요한 일을 상의해 왔다”며 “연세에 비해 건강하시고 직접 운전할 정도로 인지력도 좋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