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연간 77개의 라면을 먹는 나라, 한국. 국민 1명당 약 5일에 한 번꼴로 라면을 먹는 셈이다. 라면은 한국 근현대사를 거치며 가장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한국 최초의 라면은 1963년에 나온 삼양라면이다. 삼양식품을 설립한 전중윤 회장은 일본의 라면 제조 기술을 도입했다. 초창기 삼양라면은 하얀 국물에 일본의 치킨라멘과 마찬가지로 닭고기로 맛을 냈다. 하지만 다소 느끼하다는 이유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당시 라면은 손님이 와야 대접할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기에 서민들 사이에서 수요가 많지 않았다. 고전하던 라면이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한 건 1960년대 박정희 정부가 시행한 ‘혼분식 장려정책’을 통해서다. 혼분식은 쌀 소비 절약을 위해 잡곡을 섞어 먹는 혼식과 밀가루 음식을 섭취하는 분식을 합친 말이다.
혼분식 정책으로 삼양라면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점차 라면 수요가 늘어 1960년대 중후반 많은 기업들이 라면에 뛰어들었다. 66년에는 롯데공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롯데라면’은 추후에 ‘농심라면’으로 이름을 바꾼다. 70년대가 다가올 무렵에는 삼양과 롯데(농심)만이 살아남았고, 80년대에는 한국야구르트(현재 팔도)와 청보라면 등이 가세했다. 87년에 청보라면을 인수해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오뚜기다.
라면의 인기는 당시 시대적 상황과도 관련있다. 1960년대 뜀박질을 시작했던 한국 경제는 1970년대에 이륙하기 시작했다. 서구에서 수백 년 걸린 산업화를 수십 년 만에 가능하게 한 건 가쁜 속도전이었다. 냄비, 물과 불만 있으면 어디서든 빠르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었던 라면은 이 속도전의 동반자였다. 이때부터 라면은 밤낮없이 일하는 노동자와 끼니를 때우는 청소년 등 남녀노소할 것 없이 필수 식량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라면 회사들은 한식의 전반적인 경향에 따라 쇠고기 육수 맛을 베이스로 매운맛을 조금씩 가미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농심그룹의 베스트이자 스테디셀러 라면인 신라면이 나온 1986년 이후로 ‘매운 라면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라면이 한국인의 밥상에 오른 지 60여 년 이후 현재 라면 업계는 스테디셀러 제품인 ‘매운 국물 라면’을 꾸준히 리뉴얼 중이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통상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부터 국물라면 매출이 오르기에 출시도 이때로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에는 삼양식품이 60주년을 기념해 대표제품 삼양라면을 리뉴얼했으며, 최근 오뚜기는 면발과 건더기, 국물까지 전면 개선한 버전으로 진라면을 내놨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