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교회에 부임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목사님은 사모님과 W 권사님 댁에 심방을 가셨는데, 그 권사님이 목사님과 사모님을 모르는 사람인 양 데면데면하셨답니다. 그래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그 권사님에게 치매가 왔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요.
그런데 심방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W 권사님은 한겨울임에도 옷을 얇게 입은 상태로 들판에 나가셨다가 동사하셨다고 해요. 이처럼 어떤 큰일이 벌어진 후에야 치매임을 알게 되는 경우가 각 가정뿐만 아니라 개별 교회에서도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주일예배를 드리고 가셨는데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 교회에 또다시 오시는 겁니다. 아주 익숙한 길이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교회를 찾지 못해서 헤매고 헤매다 집으로 가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교회에는 오셨어도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문을 열지 못해서 나오시지를 못한다든지 예배 때 성경 말씀이나 찬송가를 찾지 못 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때로는 여전도회에서 사업으로 파는 물건들을 매주 사거나 아니면 외상으로 샀는데 그 사실을 뇌에 저장할 수 없으니까 물건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하거나 아니면 돈을 주었다고 우기기도 합니다. 심방을 이미 받았는데, 왜 아직 심방을 오시지 않냐며 목사님께 전화해서 화를 내는 일도 있지요. 심한 경우 가방 속에 넣어둔 십일조 헌금 봉투가 없어졌다며 교인들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치매임을 알 수 있는 단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치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서 치매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나이 들더니 뭔가 고집이 세지고 성격이 괴팍하게 변해가는 그러니까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서 그 성도를 향해 수군대거나 간혹 왕따를 시켜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십일조 헌금 봉투가 없어졌다고 하신 권사님은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치매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치매는 단순히 기억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경험한 것이나 학습한 걸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다. 이를테면 2000년 0월 0일이 아들의 생일이라는 건 아는데, 오늘 날짜를 뇌에 저장하지 못하니까 오늘이 바로 아들의 생일이라는 건 알지 못하지요. 이 권사님도 지난주에 이미 십일조 헌금을 하였는데 그 사실을 뇌에 저장할 수 없으니까 자기 나름의 합당한 이유를 찾아낸다는 것이 그만 교인들을 의심하는 것으로 나타난 겁니다.
방송에서 보고 들은 것, 그것이 치매 환자의 전부는 아니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치매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치매에 대해 알면 치매에 대한 단서들이 눈에 띄고 그 단서들을 통해 교회에서 치매 교인들과 그 가족들까지 도울 수 있습니다. 나아가 치매 친화 사회를 구축하는데 교회가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통계청의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3년 만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는 우리나라 인구의 18.4%에 해당합니다. 2025년이면 대한민국 인구 5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의 노인으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더불어 현재 우리나라 인구 중 65세 이상에서 10명 중 한 명은 치매입니다. 물론 60대에서는 100명 중 한 명으로 치매 환자가 별로 없지만 80대 이상에서는 4명 중 한 명, 90대 이상에서는 두세 명 중 한 명 이런 식으로 연령대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요.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교회의 고령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비록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교회를 대상으로 한 건 아니지만 2024년 3월 기독교대한감리회 동부연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소속 교회별 출석 인원 가운데 절반(49.6%)이 60대 이상의 노인이었고 18세 이하는 8.6%였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해서 그렇지 교회 안에는 이미 치매가 진행 중이거나 아니면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에 해당하는 분들이 꽤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성도가 치매에 대해 알아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치매에 대한 편견 때문인데, 이를테면 소리 지르며 욕하고 때리고 어느 때는 똥을 주무르는 모습이 치매의 전부인 양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습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일부분입니다.
우리는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을 보고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인 양 부러워하지만 그건 일부분이잖아요. 그것처럼 방송이나 지인에게서 들은 것 한두 가지를 가지고 그것이 치매 환자의 전부인 양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치매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긍정적인 모습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설령 치매 환자가 욕하고 소리 지르는 행동을 할지라도 알고 보면 거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치매는 뇌의 손상으로 인한 뇌의 문제다
어쩌면 교회공동체가 세상보다 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거 같습니다. 흔히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교인들이 사적으로 모이면 이런 말들을 하죠. “누구누구 권사, 그렇게 목사님 하는 일마다 반대하더니 치매 왔어”라고요. 이건 기복신앙의 한 단면으로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과 고통을 모두 하나님의 벌로 생각하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치매는 ‘여러 가지 원인에 따른 뇌 손상으로 전반적인 인지기능에 장애가 생겨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라고 정의하듯이, 치매는 뇌의 손상으로 인한 뇌의 문제입니다. 목사님 전도사님께 이런 하소연을 하는 교우들이 있다고 합니다. 치매가 온 남편에 대해 말하며 “목사님, 우리 남편이 아무래도 마귀가 들린 거 같아요.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목사님도 또 저도 위선자래요”라고 한답니다.
치매 환자가 ‘하나님이 없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귀신이 들린 건 아닙니다. 그런 말과 행동은 망상으로 치매 환자가 보이는 정신행동 증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치매가 오면 감정을 조절하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뇌의 부분이 손상을 입은 데다가 마음속에 풀어지지 않은 감정이 더해지면 얼마든지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귀에 들렸다고 단정 짓거나 절망하지 말고 치매 환자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다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런 증상도 사라질 겁니다.
치매가 왔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건 아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치매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는 성도들 사이에서조차 치매가 오면 자신의 인생은 ‘완전히 끝났다’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암보다 걸리기 싫은 것이 치매라고 하듯이 교회에서 연세 드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기도 제목이 치매 오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라고들 하시죠.
하지만 치매가 왔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치매는 새롭게 경험하거나 학습한 것을 뇌에 저장할 수 없어서 그렇지 이미 뇌에 저장된 것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그래서 치매 중기 이후가 아닌 이상 꺼내서 쓸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미 저장된 것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최근 기억부터 조금씩 사라지긴 하지만요.
이렇듯 치매 환자는 새롭게 경험한 것이나 학습한 걸 뇌에 저장할 수 없어서 늘 모든 것이 새롭고 그래서 현재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밥을 이미 먹었다는 사실이나 이따가 밥을 먹어야 한다는 건 뇌에 저장이 안 되니까 밥을 먹고도 또 밥을 달라고 할 수는 있지만, 밥을 먹으면서 예전에 가족들과 함께 즐겨 먹던 음식 이야기며 추억들을 현재로 소환하여 대화의 소재로 삼을 순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죠. 치매 성도라면 뇌에 저장된 신앙과 관련된 좋은 추억들이 많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잔존기능에 해당하는 자원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온종일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찬양을 부를 수도 있고 반대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옆에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평소 입버릇처럼 자주 했던 말들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옵니다. 예컨대 대화 중에 ‘다 하나님 덕분이야’, ‘감사밖에 없어’라는 식으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십니다. 나아가 실제로 녹음기를 튼 것처럼 자신이 젊은 시절부터 해온 그대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걸 보면 치매가 왔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건 아닙니다. 게다가 치매가 오고 나서 자신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반복된 말과 행동이 뇌에 그리고 몸에 확실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식탁이 차려지면 늘 하던 대로 손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뭘 배워야 할까요. 맞습니다. 남들이 보고 칭찬할만한 신앙 습관이 몸에 밸 수 있도록 젊어서부터 애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치매 카페에 대한 것입니다.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는 현재 7900여 개의 치매 카페가 있다고 합니다. 치매 카페는 치매 환자와 그 가족, 그리고 치매와 관련된 사람들이 와서 차도 마시고 정보도 공유하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위로하고 위로받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 교회들이 뭔가 지역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글=강현숙 작가, 치매돌봄 전문가, ‘오십의 마음 사전’(유노책주) ‘치매지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생명의말씀사) 저자
편집=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