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숙 작가의 교인 풍경-4] 직분 뒤에 숨어있는 미해결과제

입력 2024-09-18 00:05
게티이미지뱅크

휴가까지 내고 남선교회 수련회를 가서 은혜받고 온 남편이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집안일도 도와준다며 아내인 K 집사님은 좋아하였지요. 그런데 수련회를 갔다 온 지 채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도루묵이 되었다고 속상해하였어요.

모태신앙으로 결혼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남자 집사님은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대학 내에 있는 기독교 동아리에서 아내를 만나 연애도 할 만큼 했고 이만하면 됐다 싶어서 결혼까지 했는데, 막상 부부생활을 하고 보니 ‘이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엔 권사나 장로의 직분이 무색할 정도로 집이나 직장, 심지어는 교회에서조차 ‘저런 사람이 어떻게 직분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라며 욕을 먹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영적 우회(Spiritual Bypassing)’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영성 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 중에 ‘영적 우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건 심리치료사이자 자아 초월 심리학의 개척자인 존 웰우드(John Welwood)가 만든 용어로 과거 자신의 미해결과제들을 직면하여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직분’이나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들을 덮어버리려는 것을 말합니다.

직분을 받으면 어떤 사람들은 마치 그 직분이 영적으로도 성숙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자신의 내면까지 바뀐 것으로 착각합니다. 물론 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건강한 직분자들이 더 많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는 겁니다. 마치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영적으로 성숙함을 의미하는 건 아닌 것처럼이요.

교회에서 ‘권사’ 혹은 ‘장로’의 직분을 받으면 직분자들은 직분에 걸맞게 살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그리고 힘에 겹도록 일하는데도 어째 좋은 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마디 하면 잠잠해지기는커녕 그 말로 인해 서로 갈등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미해결과제는 직분에 어떻게 걸림돌이 되나?

그래서 우리는 직분을 받고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늘 나의 내면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것을 너무 앞세우다 보니 자신의 심리적 문제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심리적 문제라 할 수 있는 과거 나의 미해결과제는 현재 내가 맡은 직분을 수행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때가 참 많습니다.

여기서 미해결과제란 과거의 일이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마음속에 남아서 해결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처받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해결과제는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의 과제’이기도 한데요, 미해결과제를 무시하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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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가 있어요. 60대 중반인 K 권사님은 어린 시절 예배당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부터 신앙생활을 그만두었지요. 지금도 구순의 어머니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며 자신을 위해 늘 기도하신답니다.

K 권사님은 전도대의 전도를 받고 다시 교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교회에 나온 지 몇 년 되지 않아 권사의 직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K 권사님은 온 교우들이 좋아했는데, 명랑한 성격인 데다가 매우 적극적이어서 뭔가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일을 시원스럽게 해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교인들이 봄이니까 꽃구경을 하러 가고 싶다고 하면 언제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해 일사천리로 추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권사님에게는 미해결과제라 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뭐냐면 K 권사님이 딸부잣집에 막내로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딸을 낳았다고 며칠씩이나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고 한동안 막내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답니다. 그러면서 옷도 남자처럼 입혔는데 집안일 중에 험하고 궂은일들은 모두 이 권사님의 몫이었다고 해요.

K 권사님은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살아오면서 늘 자신이 대장 노릇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곤 했답니다.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나름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분출시켰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어느 집단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 권사님에게로 우르르 몰려가지만, 나중에는 갈등하고 부딪치고 그러다가 결국은 좋지 않게 끝나곤 했답니다.

그런 모습이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겁니다. 바뀐 것이 있다면 ‘권사로서 교회 일을 한다’라는 포장이 한 꺼풀 덮어씌워 진 것이지요. 물론 K 권사님은 권사 임직을 받고 기뻐하고 또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교회 일을 한 건데,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미해결과제인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권사의 역할을 하는데 방해물로 작용한 겁니다.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미해결과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이런 것도 일종의 영적 우회에 해당합니다. 어떤 경우는 자신의 미해결과제라 할 수 있는 ‘해결되지 않은 마음의 상처들’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것을 성취에 대한 욕구로 방향전환을 하도록 하는 겁니다.

만약 자식이 어떤 열등감을 느낄 때 부모는 자식의 존재에 대해 충분한 인정을 해주어야 하죠. 그런데 존재에 대한 인정은커녕 ‘그러니까 무시당하기 싫으면 대학 가라고’라는 식으로 자식을 몰아붙이죠. 이처럼 ‘정서적 욕구나 결핍’을 ‘성취에 대한 욕구’로 대체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일종의 영적 우회로 직분을 받음과 동시에 미해결과제가 해결되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욱이 교회에서 진행되는 각종 프로그램을 마치면 마치 자신의 미해결과제들이 다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양한 성경공부 모임이나 제자훈련을 비롯하여 ‘내적 치유 프로그램’, ‘자녀 양육 프로그램’ 등을 이수한 걸 가지고 자신의 심리적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것인 양 생각하는데 이건 그야말로 착각입니다.

그럼 시간이 지나 신앙생활의 년 수가 길어지면 미해결과제들이 해결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융에 의하면 우리의 의식 밑에 가라앉아있던 미해결과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죠. 반대로 중년기 이후에는 도리어 수면 위로 올라온다고 하지요. 그러기 미해결과제들은 교회에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내 행동의 숨은 동기 살피기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교회 일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면서 과거에 억눌렀던 자신의 상처받은 감정들을 마구 분출시킨 K 권사님처럼 자신도 모르게 권사라는 직분을 남용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하여 감정조절이 잘 안 되니까 교인들을 이간질하고 그래서 교회가 나뉘는 일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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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때문에, 나의 미해결과제들은 언제든지 나도 모르게 내 행동의 ‘숨은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면서 내 마음을 살펴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과거에 상처받은 마음들이 올라오면 주님께 기도하면서 온전히 치유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영적 우회와 관련하여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홀어머니와 아직 학생 신분의 동생들이 여러 명 있는 청년입니다. 이럴 때 건강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래도 대학을 졸업했으니까 우선은 취업하여 집안을 돕는 것이 마땅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니까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선교사로 지원한 청년을 보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과 명령이 우선이라는 걸 강력하게 내세우며 결정했는데, 이런 행동은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것도 일종의 영적 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자신은 신앙연수도 길고 또 성경도 잘 알고 영성도 깊다고 생각해서 영적으로 성숙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읽지 않고 기도도 몇 분할까 말까 하는데 사실 신앙생활은 현재시제이기 때문에 과거에 기도 많이 하고 성경 많이 읽은 건 아무 소용없습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직분이 왜곡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영적 우회’에 대해 살펴봤는데, 누구라도 마음의 상처라 할 수 있는 미해결과제가 없는 사람은 없죠. 따라서 우리의 미해결과제가 우리의 직분 뒤에 숨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우리는 늘 말씀과 기도를 통해 나의 마음을 성찰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되겠습니다.


글=강현숙 작가, 치매돌봄 전문가, ‘오십의 마음 사전’(유노책주) ‘치매지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생명의말씀사) 저자

편집=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